제가 사는 포틀랜드 시에는 한국행 직항노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애틀이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이용해 한국을 방문합니다. 1년여 전부터 모 항공사에서 고객 유치의 일환으로 자사 항공편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포틀랜드와 시애틀간 셔틀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그 버스를 타고 시애틀 공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포틀랜드에서 시애틀-타코마 공항까지는 약 세 시간, 출발 두 시간 전에 도착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그날 따라 이용객이 12명이나 되어 큰 승합차 두 대에 나눠타고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시가지를 지나 5번 국도에 진입하자 차량은 속도를 줄였고, 전방에는 길게 늘어선 차량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통상황을 알려 주는 앱을 통해 3마일 전방에서 교통사고가 있었고 그 처리로 인해 도로가 막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정체가 너무 심해서 1마일 전진하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는 거였습니다. 예상보다 정체 시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륙 시간에 늦으면 발생할 난감한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의 고국 방문으로 들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은 심각해져만 갔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저마다의 생각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비슷한 경험담에서부터 우회도로로 빠지는 것이 나을지 안 나을지에 대한 의견, 늦게 도착해도 비행기가 기다려 줄까 하는 생각, 나아가 미국 사람들의 운전 습관, 한국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공공기관의 행정 처리 속도 등 주제도 다양했습니다. 불안을 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장 초조해진 사람은 운전기사였습니다. 이 정도의 정체는 본인이 셔틀 버스 운행을 한 이후 처음이라면서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여행사를 통해 항공사에게 겪고 있는 상황을 알려 주었고, 교통정보 앱을 통해 다른 우회도로가 있는지도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이 서질 않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때 기사분은 뒷좌석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교회 다니시지요? 기도 좀 하세요. 빨리 가게요” 그 할머니는 90세나 되셨는데, 홀로 고국 방문길에 오르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대답이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기도야 벌써 하고 있지요” 기사분이 물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어요?”“뭐라고 기도하긴... 기사양반 길을 좀 봐. 도로 상황이 이런데 어찌 빨리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나. 안전하게 가면 감사한 게지. 모두들 사고나지 않고 무사히 도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께서는 “기사양반,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가게 되면 가는 거고 늦으면 어쩔 수 없지. 안 그래? 우리 때문에 너무 서두르거나 초조해 하지 말아요.”라고 위로했습니다. 할머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러나 따뜻하게 말했습니다. 함께 탄 다른 분들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기사분은 그 말에 많은 위로를 얻은 듯했습니다. 저 또한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초조한 마음을 이겨내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키려 했던 차 안의 사람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기도 부탁에 대한 할머니의 대답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얼마를 더 갔을까. 여전히 길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사분이 반가운 소식이라며 자신에게 온 문자 내용을 알려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가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경우 그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연쇄작용으로 지연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늦게 도착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사분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사건의 연속이네요. 할머니 기도를 들어 주셨나봐요. 허허!”차 안의 다른 사람들도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3마일 정도를 가는 데 1시간 30분이 걸렸지만, 어느 지점을 지나자 제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보통 때보다 두 시간 더 걸려 공항에 도착했지만, 비행기의 실제 이륙 시간보다는 1시간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당연히 12명의 사람들은 큰 문제 없이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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