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며 (3)

셔우드 가족을 위한 공식적인 환송회는 병원, 요양원의 세 기관 공동으로 요양원 예배당에서 갖기로 결정되었다. 기억에 남을 이 행사는 불청객의 참석 없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끝맺음에 있어 요양원 교회의 김 목사(Y. S. Kim)는 사태가 호전되는 대로 꼭 돌아오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송사의 마지막에 가서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닥터 셔우드 역시 답사를 하는 동안 눈가가 눈물에 젖어 있었다. 셔우드는 해주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작별이라는 점에서 셔우드는 더욱 할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식이 끝나자 환자들 여러 명이 셔우드에게로 와서 청진기를 자기들 가슴에 대어달라고 사정하는 통에 닥터 셔우드는 비로소 슬픔에서 깨어났다. 환자들은 셔우드의 청진기가 병을 진단하는 데 쓰는 도구라기보다 신비한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이들은 모두 병이 많이 호전된 사람들이었으므로 셔우드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청진기를 가슴에 대주며 용기와 편안함을 주었다.

해주역을 출발할 때는 아무 말썽이 없었다. 조 필리스를 돌봐 주었던 최씨는 헤어지기 아쉬워 눈물을 흘렸다. 공립학교의 선생인 나가따 브이츠 씨 가족은 셔우드 가족이 떠나는 것을 보려고 역에까지 나와 주었다. 감시가 심한 때인데 나와 준 그들의 우정에 셔우드 부부는 가슴이 뭉클했다.

서울에 도착한 셔우드 가족은 사복형사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서로 갈라지기로 했다. 메리안은 아이들을 데리고 핍스 씨 댁으로 갔고 셔우드는 친구인 찰리 사우어에게 갔다. 그는 서울에 남아 선교회 일을 정리하고 있었고 평양 기지는 무어(J. Z. Moore) 씨가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도 곧 떠나야 했다.

어느 사이에 서울은 전쟁을 실감하게 하는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길거리는 한산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회색 옷만 간혹 보였다. 전시에는 회색 옷을 입으라는 지시가 내려졌던 것이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많았으나 부인들과 아이들은 어느 거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조선인 상점들의 문이 판자로 가리워져 두었다. 셔우드가 친구들 집을 찾아가보니 이미 쓸쓸하게 버려진 빈 집들이 되어 있었다. 셔우드는 친구들이 모두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셔우드는 조선에서의 즐거웠던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서울 풍경은 셔우드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그러나 아직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다.

차이나타운을 지나는데 전에는 화려하고 사람들로 붐볐던 곳이 어찌나 황량한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차이나타운은 화려한 거리였다. 전통적인 음력설이면 그림 같은 중국 등의 불빛이 휘황했고 폭죽 터지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노래하는 소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서양의 경축은 우중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토록 화려했던 이 거리가 지금은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게 텅 비어 있었다. 겁 없이 뛰어다니는 쥐들만이 우글거릴 뿐이었다. 옛날 이 거리에서 행복했던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비참함에 놀라 셔우드의 몸은 저절로 떨렸다.

셔우드는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이 황폐한 거리를 벗어나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확실히 생동감이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얼굴들을 볼 수 없었다. 이때 귀를 때리는  ‘때깍때깍’ 게다 소리가 들렸다. 게다는 군인들의 군화를 만드는 데 귀한 가죽을 절약하기 위해 일본인들 거의 모두가 신는 나막신이었다.

셔우드가 이렇듯 다른 두 지역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복형사가 나타났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셔우드는 순간적으로 한 생각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혹시 내가 보안 지역에 잘못 들어온 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웃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당신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누구와도 불순한 접촉을 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으므로 16mm 영사 필름을 돌려 주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필름은 경찰서로 누가 가져온 것입니다. 나와 함께 가면 돌려드리겠습니다.”

“이건 함정이 아닐까? 나를 끌고 가는 방법일까?”

이제는 전과 달리 사람 말을 믿지 못하게 된 셔우드는 자신이 두려웠다. 그러나 아무리 의심이 된다 해도 그를 따라가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경찰서에 도착한 셔우드는 친절한 분위기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은 부드러운 태도로 셔우드를 맞이했다. 셔우드는 그들을 의심했던 걸 후회했다. 담당 경찰관이 말했다.

“여기 당신들이 찍은 필름들이 있는데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보라고 말했다.

셔우드는 지체하지 않고 필름을 봤다. 틀림없이 자기 가족의 것이었다. 담당자는 셔우드의 어깨 너머로 필름을 봤다. 그는 여러 장면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이 찍힌 필름을 돌려받게 되어 아내가 기뻐하겠다고 말했다.

“당신네들이 우리 일본인들같이 아이들을 사랑하니 좋습니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높은 지역에서 촬영된 필름들은 없앴습니다. 그런 장면들은 전쟁이 끝나면 다시 찍을 수 있지요.”

그는 더 이야기하고 싶은 모양이었으나 셔우드는 빨리 그 자리를 나오고 싶었다. 그는 군부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비록 군부가 드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그 세력이 안정권에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당신이 풀려났을 때 육군 담당관들은 펄펄 뛰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요. 거기에 중요한 점이 있어요. 당신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들의 생각이 달라진 거지요. 군인들은 말이죠. 당신도 아시다시피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계획하고 있으므로 결국 인도도 이에 포함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지요. 군인들은 당신이 인도에서 일본군이 진주할 때 영접 위원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군인들이 더 이상 셔우드를 괴롭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위로의 말도 했다.

“그래서 이제 당신에게 필름을 돌려 주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심부름꾼을 부르더니 무거운 필름 뭉치를 들어다 주라고 명령했다. 셔우드는 경찰 간부의 호의에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닥터 셔우드는 몇몇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헌병대 대장에게는 들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 때문에 당한 일 때문에 미운 감정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일본 민간인들이 누구나 다 좋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모든 군인들이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닐 것이었다. 셔우드는 기독교인으로서 “악은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아버지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셔우드는 헌병 대장을 만나 그 동안 미워했던 감정을 버리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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