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며 (4)

이제 셔우드는 해주에서와 다르게 죄수가 아닌 자유의 몸으로 헌병대에 들어갈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대장은 유쾌하게 셔우드를 맞아 주었다. 셔우드는 그에게 작별 인사차 방문했음을 전하고 “당신을 미워하는 감정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셔우드는 또한 어떤 부탁이나 무슨 선처를 바라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 주었다.

헌병 대장은 ‘미워하는 감정’이라는 말은 못 들은 척하며 간단히 대답했다. 그는 오다 씨와 사사끼 씨가 셔우드의 결핵 퇴치 사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면서 자기도 개인적으로 셔우드의 봉사에 감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서울을 떠나는 날짜와 시간을 물어 비서에게 메모하게 했다. 셔우드는 의례적인 수사상의 확인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나올 때는 그다지 즐거운 심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셔우드는 기독교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느꼈다.

드디어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공식적인 작별 인사도 끝났고 은행 구좌도 닫았다. 여권의 비자도 받았으며, 기차, 여관 예약도 다 끝났다. 셔우드는 해주에서와 같이 조선인 친구들에게 역까지는 나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셔우드 부부의 충고를 무시하고 역까지 나왔다.

서울에는 몇 사람의 서양인이 남아 있었으나 이들도 강제 추방되었다. 역에는 많은 일본인 친구들이 플랫폼에서 셔우드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오다 씨 부부와 사사끼 씨 내외도 있었다. 사사끼 씨는 최근 서울의 적십자로 자리를 옮겼다. 역에서 셔우드 가족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들 나름대로 셔우드 가족을 도와 주었던 지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셔우드를 놀라게 한 사람은 헌병대 대장이었다. 그는 부하와 함께 플랫폼에 서 있었다.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는 육군 장교가 전에 자기가 죄인으로 다루었던 사람에게 인사하러 나왔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셔우드 가족의 친구들은 “무슨 일이 또 벌어질 것인가?”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셔우드 가족과 친구들의 두려움은 헌병대 대장이 셔우드에게 정중한 인사를 할 때야 비로소 진정되었다. 헌병대 대장은 “인도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기원한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친절한 작별 인사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가 셔우드 가족의 여행 안전을 보장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셔우드 가족이 고베까지 여행하고 일본을 떠날 때까지 셔우드 가족을 잘 보호하라는 엄한 명령서를 발부했다고 확언해 주었다. 수많은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한 채 한국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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