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예쁩니다. 그런데...

 
“어쩌면 저렇게 예쁠 수 있을까?” 정말 깜직하고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잘 다듬은 머리칼과 목에 두른 예쁜 스카프, 잘 빠진 몸매와 세련된 옷차림. 한국에서 마주친 여성들은 미국에서 보던 여성들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게 눈길을 빼앗기는 나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아직도 내가 젊은가?”

예쁜 아가씨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미처 보지 못한 모습들을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하고 목격했습니다. 십대들은 십대대로, 이십대 아가씨들은 아가씨대로, 중년 여성들은 중년 여성대로, 심지어 7, 80대 할머니조차 정말 예쁘게 차려 입었습니다. 한국에서 마주친 여성들이 모두 예쁘다는 느낌을 방문 첫날과 둘째날, 서울 거리를 다니면서 경험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거리에서, 에쁜 한국 여성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사흘째부터 예쁜 모습들이 너무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화장한 모습도, 립스틱 색깔도, 이 거리에서 만나는 여성도, 저 골목을 돌아서 만나는 여성도, 그 예쁜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고, 헤어 스타일까지 비슷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자들은 예쁨의 정도가 거의 비슷했습니다. 성형 수술을 많이 한 덕분인지 정말 비슷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예쁘다는 첫 느낌은 사라지고, 자기자신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움과 멋을 발휘하지 못하는 몰 개성, 너도 나도 유행만 따르는 문화, 비교 의식, 그리고 더 나아가 개인의 의식과 자아가 발달하지 못한 집단주의 문화, 이런 것들을 한국 여성들의 패션과 예쁜 모습을 통해 발견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생각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초 인터넷 정보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몰 개성, 집단주의 정서를 통해 우리 삶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세계는 각기 그 종류대로

올 봄에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었습니다. 한국산 고추, 스위트 페퍼도 심었고, 방울 토마토,이탈리아 토마토, 한국 오이를 닮은 피클용 오이, 케일, 그리고 상추를 심었습니다. 올해는 거름을 잘 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들이 잘 자랐습니다. 고추도 풍년이어서 여름에는 거의 매일 따먹었습니다. 방울 토마토는 방울 토마토대로 잘 익었고, 부엌 창가에서 바로 보이는 텃밭에 심은 토마토가 열매 맺는 모습은 아름답고 아기자기하였습니다. 그 토마토를 간식으로 먹고, 샐러드에 넣어서 먹고, 와인을 마실 때 치즈와 함께 먹었습니다.

올해 농사의 최대의 기쁨이자 큰 수확은 오이였습니다. 오이가 잘 자라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매일 따먹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분은 “식감”이 다르다고 말할 정도로 맛있게 익었습니다. 텃밭에 심은 채소들은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자랐습니다. 각자 색다른 맛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서로 비교하고, 시샘하고,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24-25).

하나님은 세상 만물 중에 가장 으뜸인 인간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작품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에베소서 2:10). “그래도 야훼여,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 당신은 우리를 빚으신 이, 우리는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이사야 64:7).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그 고유함이 우리들의 지문과 DNA 속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남과의 비교를 멈추고,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비교가 우리들의 행복 지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영국 BBC 방송이 조사한 행복 지수에서도, 삼성경제연구소가 실시한‘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남과 비교한 여러 가지 지수에 의해 행복 지수가 좌우되는 것이었습니다. 남과 비교할 때 행복 지수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영문학자며 철학자인 루이스(C. S. Lewis)는 사탄이 현대인들의 인격과 의식을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비교 의식”이며, 이는 열등감의 배후세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비교할 때 사탄이 개입합니다. 행복은 비교의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주관적이며, 하나님께서 창조한 본래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작품으로 살아갈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G. Jung)은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은 ‘존재에 대해서 개별화(개성화, individuation)된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존재의 개별성’입니다. 비교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냥 나일 뿐입니다. 나 자신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자아의식이 무의식의 중심에 있는 자기에 도달함으로써 본연의 자기를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자신의 개별적 존재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수선이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선(善) 중의 으뜸은(上)은 물(水)처럼 사는 것입니다. 물(水)의 선(善)은 모든 것을 섬기고 이롭게 하면서도 겨루거나 다투거나 하소연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유부쟁 (夫唯不爭) 고무우(故無尤)’는 흐르는 물이 그 무엇과도 다투지 않는 까닭에 허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물은 서로 겨루거나, 다투거나 비교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이롭게 합니다.

12월,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살아 왔나를 돌아 봅니다. 텃밭의 각기 다른 채소처럼 나만의 맛을 내었는지 질문해 봅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만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또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인에게 쓸모 있는 그릇으로 바쳐져서 모든 좋은 일에 쓰입니다”(디모데후서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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