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가장 고통 중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원제, Pain is inevitable but MISERY IS OPTIONAL, so Stick a Geranium in your hat and happy!)라는 책은  미국에서 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바바라 존슨(John Son, Barbara, 1927~2007)은 유머 작가로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본래 남편과 네 명의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가정에 불행이 연이어 들이닥쳤습니다.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해 여러 해 동안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음주 운전자가 몰던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셋째 아들은 동성애적인 삶을 좇으며 가족을 멀리했습니다.

그녀는 연속되는 불행에 몸서리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불행만 찾아옵니까?”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비참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잡초 대신 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긍정적인 삶을 되찾은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감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마음에 감사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식물인간이었던 남편이 기적처럼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주셨으니 나도 뭔가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미국 병사들의 숫자가 5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아들이 죽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국가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입니다.”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도 편지를 쓰고 전화로 위로했습니다. 이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세미나도 개최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Spatula 선교회도 조직했습니다. 뇌종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는 중에도 사람들에게 글과 강연을 통해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녀가 계속해서 절망하고 불평하는 인생을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비참한 생활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생활로 돌아섰을 때, 그녀의 인생은 새로워졌습니다. 환경을 뛰어넘는 감사의 노래는 이토록 소중합니다.

욥은 본래 우스 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아내와 여러 자녀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재난과 죽음의 사자가 욥을 공격했습니다. 욥의 모든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욥에게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스바 사람이 갑자기 공격하여 밭가는 소와 풀을 먹고 있는 나귀를 몽땅 빼앗아 가고 종들은 칼에 찔려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비보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종이 달려와서 말하기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양과 그 양을 먹이던 종들을 다 태워버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종의 비보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종이 달려와서 말하기를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다 빼앗고 칼로 종들까지 죽여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세 번째 종의 비보가 끝나기도 전에 네 번째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네 번째 비보의 내용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풍이 불어와서 맏형의 집을 무너뜨리고 그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아들, 딸들을 몰살시켰다는 것입니다. 욥은 순식간에 양 7,000마리와 약대 3,000마리, 소 500겨리와 암나귀 500마리를 몽땅 잃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욥의 집에서 일하는 수많은 종들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보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은 아들 일곱과 딸 셋이 몰사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 큰 부자가 가장 불쌍한 거지로 전락했으며, 의지할 곳 없는 측은한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야훼시요 거두신 이도 야훼오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원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하나님께 찬송하고 경배하였습니다. 욥은 칠흑같이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에서 감사하는 신앙으로 우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있게 한 분은 하나님이라는 신앙입니다. 욥이 받은 그 엄청난 슬픔의 소식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진행하신 사건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욥은 “주신 이도 야훼시요 거두신 이도 야훼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임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극한 상황에서 드린 욥의 찬송과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앙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세상만물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입니다.

최악의 상황을 만나서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어야 하는 슬픔에 빠졌는데 욥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다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처했을 때 취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슬픔과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노래한 것은 욥이 너무 슬퍼서 정신이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욥의 가슴 깊숙한 곳에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그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세상만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일이라도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것을 믿을 때 욥처럼 극한의 슬픔 가운데서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축복받은 자의 노래요, 은혜 받은 자의 노래요, 진정한 예배자가 되게 합니다. 진정한 감사 신앙은 흔들리고 쓰러질 수밖에 없을 때 일어나도록 만드는 신앙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어 감사의 고백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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