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새로운 복음의 소식으로 갈릴리 지방 여러 곳으로 전도여행을 다니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도를 통하여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막 1:38).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찾아와 무릎 끓고 빌면서, 예수님이 원하시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내가 원하니 치유함을 받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병 환자는 그 즉시 병이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기를 엄히 명하고, 다만 이 일을 제사장에게 알리고 모세가 명한 예에 따라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장들에게 치유되었음을 입증하고 간증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치유받은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고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소문을 사방에 퍼뜨려, 예수님은 그곳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 어귀에서 서성거리게 되셨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몰려왔다고 했습니다(마가복음 1:40-45).

영적 관찰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원하시면 자신의 병도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쳐 주심만 기대하고 무릎 끓고 간구하며 매달렸습니다. 예수님은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셔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즉시 나병 환자는 예수님의 은혜로 치유받았지만 예수님이 명한 대로 제사장에게 가지도 않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도 갖추지 않았으며, 또한 치유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증거하지도 않고, 자신의 뜻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복음 전도가 일시 정체되고, 위축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선택들

나병 환자가 치유받기 위하여 예수님께 간청했다 할지라도, 오로지 고침받는 기대감만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그는 예수님께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지기보다는 소문으로 알고 있는 예수님의 병 고치는 능력 자체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 예수님께서 엄중하게 일러 주신 경고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시기 전에, 먼저 제사장에게 나병 상태를 검증받은 다음 치유를 받으라는 선택적 조건을 제안하였다면 , 이 나병 환자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부정적인 생각과 근심으로 가지 않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까요?. 마음 안에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불행하게도 그마저 포기하고 제사장에게 가지 않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법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로 인하여 이 마을에서 예수님의 복음 전도가 막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적 적용과 질문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나병 환자의 작의적인 행동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실망하실까요? 아니면 분노하실까요? 예수님의 또 다른 경고가 이 상황에서 필요할까요? 오늘도 이 나병 환자의 경우와 같은 현상들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지 않나요? 외적 충족에만 관심을 가지고 필요할 때마다 행사 때마다 예수님의 팔만 들어 주고 말씀은 무시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병고침을 받고나니 기분이 들떴나요? 너무 불쌍해서 예수님께서 고쳐 준 줄은 모르고, 예수님께서 원치 않는 소문만 내고 다니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을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영웅으로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그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예수님은 나병 환자에게, 1. 모세가 명한 대로 제사의 수순을 따라 감사의 제를 드리고(레 14:3-4), 2. 치유받아 깨끗이 회복된 몸을 제사장을 통하여 입증하고(레 14:9), 3. 하나님의 영광을 저들에게 증거하라고 명하였습니다(막 1:44). 이는 나병환자의 완전한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시고, 이로 인하여 감사하게 하시며, 이를 제사장에게 입증하여 복음을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하시고, 나병 환자를 쓰임받는 도구로 사용하심으로써 완벽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침받은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고침 받은 자로서의 존중함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이기적인 행태였습니다. 나병 환자의 상황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나병환자와 같이 엄청난 구원의 은혜를 받고 예수님의 엄중한 말씀이 임한다면(막 1:43), 어떻게 응답하겠습니까? 혹시 “예수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아요. 그렇치만 제 경우는 다르잖아요.“ 라고 말하면서 기대를 저버려야 할까요? 아니면 보다 나은 결과를 소망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나아가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을 깨끗이 고쳐 주셨지만,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다시 찾아와 감사의 예를 표하였습니다(눅 17:18). 이에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칭찬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였습니다(눅 17:19). 감사의 자세를 통한 완전한 회복으로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불쌍히 여김을 받아 하나님의 긍휼로 고침받은 나병 환자들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다시 찾은 사마리아 나병 환자에게 예수님은 완전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최근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은퇴 후에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8월, 그의 뇌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되었음에도 그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재발되기 쉬운 병이고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4개월간 집중치료를 받고 암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놀라운 사실을 주일학교 성경 교실에서 간증하여 모인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습니다. 여전히 그는 주일에 교회에서 성경교실을 열어 성경을 가르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과 태도와 행동들은 예수님의 명에 따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그의 신앙심에 따른 행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삶의 행보는 말씀으로 양육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선택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동일한 복음의 방법과 질서를 알려 주고 있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은혜 받은 것에만 만족해 자기 방식대로 과대포장하여 복음을 왜곡시키는 우를 범하곤 합니다. 나병 환자같이 격리되어 살 수밖에 없는 불결한 인생을 불쌍이 여기시고 기적같이 치료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대리만족에 취해 있지는 않은지요?

결과와 영향들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지의 여부가 달려 있고, 그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성경은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엄한 경고를 존중하지 않고 예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은 채 육신만 고침받은 나병 환자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정체를 가져오고 이웃들에게 복음을 바르게 알려 주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었음을 성경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불치병인 나병을 고침 받고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완전한 구원을 얻은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시며, 지미 카터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가 지속될 수 있으며 하나님 역사의 빠른 회복이 이루어지고 구원의 도구로 쓰임받아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짐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편집자 주 : 필자 고창익 목사님은 시카고선교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