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1-7

 
배경(context)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신 광야에 이르렀을때 , 먹을 양식이 떨어져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출 16:2-3).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당신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에게 만나(출 16:35)를 공급하여 주심으로써, 어디에서든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보살펴 주시고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서 장막을 치니 이번에는 먹을 물이 없었습니다(출 17:1). 이에 백성들은 모세와 장로들을 원망하며 자신들을 광야에 내몬 책임까지 물어 모세의 목숨을 위협하는 험악한 분위기로 치달았습니다. 모세는 바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울부짖고 매달리며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전에 나일강가에서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갖고 가라. 그리고 호렙산 반석 위에 있는 그 반석을 치라. 그리하면 반석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실행되어 반석에서 물이 나왔고, 많은 사람들의 갈증과 식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에 모세는 훗날 그 장소의 이름을 “맛사”(하나님을 시험하던 곳) 또는 “므리바” (저들이 다투었다)라고 하였습니다(출 7:1-7).

영적 관찰

하나님이 주신 표적을 통하여 일일 양식인 “만나” 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다른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최대 관심사이자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일 양식을 먹고 있는 그들은 하나님께는 직접적인 불평을 하지 못하고, 지도자 모세에게 불평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간접적인 원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일용할 양식인 만나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출 6:35),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은혜를 잊었기 때문에 광야 생활의 어려움을 모세에게 쉽게 불평하며 압박했고, 결국 그 책임을 물어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모세와 다투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내심 원망하기보다 공급받는 양식(만나)에 먼저 감사하고,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서 섬기며, 어려움의 고통을 기도하면서, 지도자 모세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요? 아니면 모세와 지도자들의 인도를 따르며, 하나님의 또 다른 약속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급했고, 모세에 대한 존경심도 없이 분노했으며, 단지 자신들의 불만이 충족되지 않는 것을 이유로 모세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지도자의 통솔력과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서로 불신하고 불평하는 자중지란에 빠지는 상태로 만들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관찰 적용과 선택들(출 17:3)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약속을 잊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만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감사가 없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일용 양식인 만나를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출 16:35),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처지를 두고 모세와 장로들을 쉽게 원망하게 되고, 결국 그 책임을 광야로 인도한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경외하는 마음이 중심에 없음으로 인하여, 조금도 인내하지 못하는 불신앙만 백성들간에 팽배하였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텐데, 그들은 르비딤 광야에 도착하여 장막을 치자 마자 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긴박한 사정이었다면, 스스로 장정들을 동원하여 우물을 파보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오로지 하나님의 표적과 기적과 요행만 바라보는 기회주의적인 불신앙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 몸을 숨기거나 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로 나아가는 선택을 하였습니다(출 17:4). 모세는 목숨이 위태로운 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 매달리며 부르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출 17:6). 이에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바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옛날 나일강에서 하수를 치던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기도 중에 기억나게 하셔서, 그 지팡이를 사용하게 하시고 반석을 치게 하여 생수가 나오게 하심으로로써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스스로 입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하나님의 사자 바로 앞에서 반석을 치게 하셔서 생수가 터져나오게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받는 능력의 종인 것을 장로들 앞에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출 17:6) 이 물은 바위에서 나온 물이 아니요, “출”이라 하는 또 다른 말로(히브리어), 반석 밑의 땅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끌어올린 물로서,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동시에 터져 올라온 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목이 마르고 물이 없다고 늘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을 잊은 채 이웃들끼리 불평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며, 사랑한다는 말은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주고 받으며 힘들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주어진 것에 감사가 없으면 불만이 일고 ,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곳에는 소망이 없고, 소망이 안 보이면 불평과 원망만 보입니다.

결과와 영향들

요즈음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언어 순화 운동을 TV 를 통해 종종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워요” “싫어요” “됐다니까요” 라는 불평과 불만의 부정적인 언어를 “고마워요” "괜찮아요” “감사해요” 라는 긍정의 언어로 순화시키는 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 형성된, 좋은 말을 골라쓰는 습관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만들어내고, 그 인격은 그 사람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운명도 새롭게 바꾸어 놓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며 소망을 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과 인내하는 고통을 보시고 그들의 운명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하여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필요한 양식인 만나를 광야에서 매일 매일 주실 때, 하나님은 그 다음에 물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되고 막상 어려운 환경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투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매달리며 울부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만나 주셨습니다. 응답하셨고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감사가 없고 불평하고 다투게 됩니다. 불만이 쌓이고 원망의 골이 깊어지면 불행을 낳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불행과 근심과 원망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모세처럼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이 “르비딤 광야” 에서의 환란과 시련을 경험 삼아, 앞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벗어나 계속되는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고 모세의 인도를 따르며 소망을 잃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를 원하는 마음에, 이를 언제나 기억하기 위하여 다음 세대를 위한 교훈으로 이를 기록하여놓은 것입니다(출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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