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의 인격과 신앙(2)

역사 속에 거의 유일한 인물

 
“그 동안의 위대한 인물을 바라본다고 / 지쳐버린 우리의 눈들이 어디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 이 죄많은 영광과 비열한 국가들이 / 빛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가? / 그래-단 한 명-처음이자-마지막으로-최고인 / 저 서양의 킨키나투스가 있다. / 그를 질투한다 하더라도 미워하지 않는 / 오직 워싱턴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남겼네./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네.”

바이런이 나폴레옹을 한탄하며 쓴 ‘나폴레옹 보나파트의 송가:Ode to Napoleon Buonaparte’의 마지막 연이다.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 이후에 그 혁명정신을 계승하고 자유와 평등의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그는 독재자가 되어 프랑스 사회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전쟁의 혼란에 빠뜨렸다.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을 한탄하면서, 바이런은 마지막에 전혀 다른 영웅적 인물을 소개한다. “단 한 명,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고(Yes-one-the first-the last-the best)”였던 인물, 그는 조지 워싱턴이며 “워싱턴의 위대함은 신에 가깝다”며 그를 칭찬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최고의 인격을 소유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오늘날 미국이라는 국가의 초석을 놓은 국부(國父)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도록 이끈 세계사적인 인물이다. 그를 통해 인류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게 되었고, 그 흐름은 지금도 광대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바이런은 “그래-단 한 명-처음이자- 마지막으로-최고”인 사람이라고 그를 칭송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자세하게 다룰 것이지만 그는 역사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선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고, 그가 원하면 왕이 될 수도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대통령으로서 중임(重任)도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독립전쟁이 끝난 뒤에 미 독립군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났고, 또 두 번 임기가 끝난 뒤 대통령직에서도 물러났다. 역사 속에서 혁명을 이룬 후에, 스스로 권력을 반납하고 물러난 사람,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선 사람은 조지 워싱턴이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나폴레옹, 영국혁명 이후의 올리버 크롬웰, 쿠바 혁명 이후의 피델 카스트로, 중국의 공산혁명 이후의 모택동, 한국의 역사 속에서 김일성, 박정희, 전두환 등 수많은 권력자들이 권력을 탐닉하고 권력의 정점에서 계속 머물기를 원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은 스스로 물러났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미국적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갖게 되었고, 미국적 번영의 기초를 놓았으며, 미국을 넘어서 세계사의 변화를 지금도 이루고 있다.

고귀한 인품의 소유자

나는 미국에 온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미국의 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미국은 세계 최대의 강국이 되었는가? 미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미국이 강대국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건국 당시의 국부들의 사상, 특별히 포용성이라는 사상과 그들이 만들어 낸, 균형과 견제의 미국적 민주주의 제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조지 워싱턴에 대한 질문으로 옮아갔다. 어떻게 그리고 왜 조지 워싱턴은 건국 과정 중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 국부 중의 국부가 된 것일까? 무엇이 조지 워싱턴을 국부로 만들었는가? 이 질문을 하면서 조지 워싱턴을 신앙인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조지 워싱턴이 살았던 시대에는 위대한 철학자. 사상가, 저술가, 정치 지도자들이 많았다. 벤자민 프랭클린, 조지 메이슨, 존 애덤스, 사무엘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조지 매디슨, 에드먼드 랜돌프 등은 조지 워싱턴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조지 워싱턴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독립전쟁 중에, 제헌의회 때에, 그리고 초대 대통령을 선출할 때에 조지 워싱턴이 지도자로 선출된 것일까? 조지 워싱턴은 그 당시에 모든 면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indispensable man)로 여겨졌다.

조지 워싱턴이 살았던 시대의 동료와 사람들, 그리고 후대에 조지 워싱턴을 연구한 사람들은 조지 워싱턴이 지도자로 선출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신체적 크기와 외모, 카리스마, 에너지와 열정, 다양한 경험, 온유함과 용기, 성격과 기질, 버지니아 출신, 부자, 야망, 독립혁명에 대한 열망과 충섬심, 식민지 사회에서의 평판 등...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는 지도자로서의 인격(character)이었다는 데 대부분의 정치학자와 역사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지적으로 월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가진 인격과 도덕성은 다른 사람들을 넘어섰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 전쟁 중에는 독립군 사령관으로서, 미국 건립 과정 중에는 초대 대통령으로서 신뢰를 얻었으며, 고귀한 품격과 행동을 보여 주었고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여 주었다.

모든 국가가 그렇지만 특별히 미국은 대통령의 지도력을 중요시 한다. 그래서 미국의 언론, 대학교, 연구기관은 역대 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설문조사를 하고 그 순위를 매긴다. 그들이 평가하는 내용은 다양하다. 지도력, 국내 정책(경제, 인사 문제, 행정 능력, 기타) 및 외교정책 업적과 도덕성, 소통 능력 등을 평가한다. 현재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하여 43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 중에서 선두주자들은 늘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이다. 순위의 차이는 있지만 늘 세 명이 선두주자군(先頭走者群)이다.

조지 워싱턴은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아 상위 그룹에 늘 뽑힌다. 지도력 분야에서는 늘 1위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또한 긍정적/ 부정적 호감도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이는 도덕성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조지 워싱턴은 긍정적 평가점수에서 언제나 높은 점수를 차지한다. 부정적 평가는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낮다. 그래서 가장 높은 호감도를 가진 대통령으로 뽑힌다. 조지 워싱턴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이고 밝은 측면이 많았다. 이 부분에서 아브라함 링컨은 2위,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3위를 기록한다.
조지 워싱턴에게 질투심을 느꼈던, 존 애덤스의 아내인 애비가엘 애덤스조차 “그에게선 위엄과 품위, 편안함과 정중함을 느낄 수 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편에게 보낼 정도였다. 미국 역사학자 밸리는 워싱턴의 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워싱턴은 언행 하나하나가 세대를 넘어 전파될 만큼 역사에 길이 남을 완벽한 인물이다.” 조지 워싱턴은 인격적으로 정말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의 인격과 신앙적 바탕 위에 지도력이 빛을 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조지 워싱턴의 신앙과 인격의 광맥을 탐사하는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조지 워싱턴의 신앙과 인격을 보면서 나의 신앙과 인격을 비교하고 성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을 닮아서, 조지 워싱턴과 같은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길 기도한다. 조지 워싱턴의 고백처럼 전능하신 그분의 인도를 간구하고, 그분의 놀라운 섭리를 경험하며 살길 원한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