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유명한 박목월 시인의 이 작품은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라는 산고를 치른 후에야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기러기는 오리, 거위, 고니와 함께 오리과에 속하는 철새이다. 선사시대부터 오리과에 속한 동물들로부터 고기, 깃털, 알, 솜털을 얻었고, 지금도 사냥용으로 인간과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청둥오리는 2,000여 년 전부터 가축화되어 인간과 함께 생활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오리고기에 다른 고기보다 칼슘과 인이 11~55배 더 들어 있어서 신체마비를 다스리고, 사람에게 유익한 기름이어서 중풍, 고혈압, 신경통 치료와 예방에 좋다고 하여 건강식품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친구들과 훈제오리 요리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막내아들이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출생하고 자란 아이라서 생선이나 오리, 염소고기 등을 먹지 않았다. 안 먹겠다는 것을 한 번만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달랬더니 투덜대며 고기 한 점을 먹고 와! 맛있다 하면서 잘 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 사육장에는 스물대여섯 마리의 기러기와 닭, 오리, 거위를 포함해 4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도시에서 키우기에 안성맞춤인 기러기를 제일 좋아하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 도시에서는 수탉이나 시끄러운 동물들을 키울 수 없다. 염소, 소, 말, 양 같은 큰 동물도 못 키우게 한다. 그러나 기러기는 목소리가 작고, 조용하며,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꾸벅꾸벅하며 인사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하여 사랑을 받는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기러기는 철새로서 전 세계적으로 14종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서식하는 종류는 7종인데, 흰기러기, 회색기러기, 흰 이마기러기는 길 잃은 철새라고 하며 텃새와 같이 사철 눌러앉아 살고 있다. 한국에서만 기러기라고 하여 별도로 분류하지만, 영어로 보면 goose(거위)와 duck(오리) 두 종류가 혼합하여 있다. 한국에서나 미국 가정집에서 키우는 기러기 종류는 영어로 모스크바 오리(muscovy duck)다. 오리와 너무 흡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기러기는 부리 주위와 목에 닭의 벼슬과 같은 흰색 혹은 붉은 색의 너덜너덜한 살이 붙어 있다. 오리 암컷은 꽥꽥하며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지만 기러기는 조용하다.

닭이나 오리는 일 년 내내 먹이와 환경이 허락되면 알을 낳지만, 기러기는 겨울에 시작하여 여름까지 산란을 한다. 그대로 버려두면 10여 개의 알을 낳고, 30여 일 동안 품어 새끼를 부화하여 키우지만, 알을 낳는 대로 수거하면 이틀에 하나씩 알을 낳다가 잠시 쉬고 여름까지 계속 알을 낳는다. 거위는 봄에 5~6개의 알을 낳아 34일 내외를 품어 새끼를 부화시키면 그 해는 끝이다. 그러나 알을 계속 꺼내면 25~30개까지도 낳는다.

기러기 알이 건강에 좋다 하여 더 많은 알을 기대하고 10월에 한 달 정도 자란 새끼 열 마리를 분양받아다가 한 달 정도 키웠더니 덩치는 거의 어미만큼 자랐다. 그동안 좁은 사육장에만 가두어 놓고 키웠다. 오리 종류들은 물놀이를 너무 좋아한다. 그러나 너무 어릴 때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엊그제는 괜찮을 것 같아 밖에 내놓았더니 한 마리가 어미들의 수영장에 풍덩 들어가서 물장난을 치며 놀다 나왔는데 아직 털이 다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솜털이 다 젖어버렸다. 어린 것들이 정신없이 물장난을 치다보면 초겨울에 체온이 떨어져서 죽기도 한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집으로 갔다. 어린 것들을 세어보니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수영장에서 죽어 가라앉았을까 걱정이 되어 막대기를 가지고 수영장을 휘저어 봐도 없었다. 한쪽 구석에 염려했던 대로 다 젖은 채 쓰러져 있었다. 얼른 집어들고 보니 차디찬 몸뚱이에 숨 쉬는 기척도 없다. 다급한 마음에 가슴과 배를 누르며 인공호흡을 시도해 보았다. 급히 집안으로 들어가 난로를 켜고 그 앞에 눕혀 놓고 주무르면서 헤어드라이어를 가지고 털을 말려 주었다. 잠시 후 약간의 경련을 일으키고 눈을 껌벅이더니 발을 조금씩 움직였다. 다시 가게에 와야 했기 때문에 상자에 눕혀 놓고 전구를 켜서 넣어 주고 나왔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털은 다 마르고 바르게 앉아있었다. 한 생명을 살리고 나니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르겠다. 하룻 밤을 훈훈한 상자에서 쉬고, 다음날 동료들의 축사에 넣어 주었더니 꽥꽥거리며 서로가 너무나 반가워들 한다.

지난 봄에, L.A. 사는 친구가 딸과 어린 손자 손녀를 데리고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우리 집 정원과 그린하우스며 각종 채소들이 자라는 텃밭을 돌아보고 동물 사육장으로 갔다. 낯선 사람들이 오니까 거위가 야단이 났다. 낯선 사람을 물기도 하며, 개와 같이 집을 지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다섯 살 손녀가 “할아버지, 오리가 왜 화났어요?”라고 물었다. 아직 거위인지 오리인지 분간 못하는 어린 아이의 솔직한 질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 혼례를 치를 때에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목안)가 등장한다. 기러기를 놓고 전안례라는 예식을 행하는데, 기러기의 세 가지 덕목을 본받아 잘 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 수명이 긴 기러기가 짝을 잃으면 혼자 지내며 정절을 지킨다. 둘째, 질서와 예의를 지킨다. 무리지어 날아갈 때 앞엣것이 울면 뒤엣것이 화답하며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앞엣것이 힘들면 다음 것이 앞장서서 날며 교대해 주는 예의를 지킨다. 셋째,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는 습성이 있어서 사람도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남기라는 뜻으로 기러기 목상 앞에서 신랑신부가 맞절을 한다고 한다.

매일 매일의 생활이 힘들고 바빠도 순진무구한 동물들과 같이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른다. 내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들어 내 발을 밟고 움직이는 통에 나도 그들의 발을 밟고 야단법석이다. 내가 그들의 표정과 원하는 것을 다 알아 듣고, 그들이 내가 말하는 것과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아 듣는다. 그들의 소리만 들어도 지금 무슨 일이 사육장에서 일어나는지 다 알 수 있다. 대화가 통하는 것이다.

지난 주일에는 몸이 불편하여 가까운 교회에 가면서 동물들을 널찍한 정원 풀밭에 풀어놓고 잠시 다녀왔더니, 사육장 안에 몰려 들어가서 모두가 고개를 쭉 빼고 두려운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직감하고 둘러보니 매가 닭을 한 마리 죽여 뜯어 먹다가 내가 오는 기척에 날아가 버렸다. 동물들이 반가워서 우르르 내게로 모여들었다. 얼마나 두려웠을지 짐작이 갔다.

늦은 밤, 가게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육장을 돌아보며, 물을 너무 좋아하는 기러기 새끼들 물그릇을 챙겨주고 밤 사이에 야생동물들이 습격하지 않도록 문단속을 해주고 돌아서면, 동물들도 안심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 같다. 비오고 음산한 날씨가 변하여 따스한 봄날이 오면 닭, 기러기, 오리, 거위가 각종 신선한 알을 제공해 주고 귀여운 새끼들도 안겨줄 것을 기대하며, 피곤한 하루 일을 마치고 드는 잠자리가 달콤하다. 비가 오고 추운 날엔 귀찮고 피곤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들이 제공한 신선한 알을 나누며, 나를 의지하고 기다리는 동물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베푸신 은혜가 무한 감사하기만 하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