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43- 제자 7

 “제자의 삶” 일곱 번째 시간인 오늘은 “소명”이라는 주제를 함께 묵상해 보자. 사람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소명 의식”이다. 특별히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소명”을 발견해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소명은 “각자 각자마다 다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들어야한다.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 다음의 몇 가지 주제를 묵상해야 한다.

소명은 신비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때로 진짜가 아닌 소명을 진짜라고 여기고 살아간다. 가짜 소명에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이 있다. 첫 번째는 나의 생각과 신념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소명을 받는 장면이 이것을 가르쳐 준다.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러 나오시자,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당신이 내게 세례를 받으러 오십니까?” 하고 펄쩍 뛰면서 반대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 3:15). 예수님의 이 말씀이 참 의미심장하다. “이제 허락하라.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이제 허락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생각을 도전하면서 뒤흔드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맞이하던 세례 요한은 지금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는 상태이다. 메시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는 자신의 일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세례를 달라고 했을 때, 이것은 자신의 소명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은 자신이 생각한 길이 아니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이 받은 소명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세례 요한의 생각을 뒤흔들며 말씀하신다. “이제 허락하라. 너의 생각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의 삶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소명의 길을 발견하라.” 세례 요한에게는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갇혀 있던 모습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진정한 소명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때로 우리는 삶의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때가 있다. 내 삶의 목적과 소명은 다른 데에 있는데,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삶의 상황은 답답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 내 삶은 소명과는 거리가 먼 듯이 느껴진다. 하지만 주님은 이러한 삶의 상황에서도 이루시려고 하는 주님의 뜻이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은 주님 안에서 버려질 것이 없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주님은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우리에게 주신 소명의 길을 이루어 가신다.

그래서 마더 테레사는 소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소명은 신비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만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소명은 신비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여정 속에서 소명이 신비하게 이루어졌음을 경험한다. 때로 우리의 삶에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찾아오지만, 우리가 그 이유들을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알게 될 때까지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소명의 길을 신비하게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소명은 발견해야 할 선물

두 번째 가짜 소명은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삶의 모습이다. 파커 팔머(Parker Palmer)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Let Your Life Speak』라는 책에서 자신이 씨름했던 소명의 문제를 소개한다. 팔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결국 교수가 되지 못하고, 작가와 사회활동가로서 살아가게 된다. 팔머가 이러한 삶을 결정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뇌와 갈등이 존재하였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교수와 학자로 승승장구하는데,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실패한 것 같아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그가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발견한 결론은 인생의 목적이란 자신에게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교수가 되는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소명을 발견하도록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사회의 한 부분에 끼워 맞추려고만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고등학교를 가고,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가면 취업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취업을 하면 승진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 이 사회가 나에게 원하는 모습, 어떤 나이가 되면 꼭 해야 하는 모습에 맞춰가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팔머는 “사회가 기대하는 나”의 모습을 향해 달려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 서서, “주님이 내 인생에 무엇을 원하시나?” 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이 소명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의 인생은 의미있는 삶이 된다. 그래서 팔머는 이렇게 말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발견해야 할 선물이다.” 주님이 내 삶에 원하시는 소명이라는 선물을 발견해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으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주님이 나에게만 주시는 소명을 붙잡고 나아가야 한다. 소명을 발견하는 삶에는 절대 늦은 시간이란 없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소명을 발견해야 할 최고의 시간이다.

소명은 주님의 사랑을 듣는 것이다

한편 소명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소명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어떤 일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명은 내 인생의 의미를 완전하게 채워 주는 어떤 것과 관계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다양한 소명의 모습들을 함께 묵상해 보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 위에 일어나시자,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 예수님은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신다. 예수님이 들으신 하나님 음성의 핵심은 사랑이다. 예수님에게 소명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의 소명은 지금 예수님이 듣고 계신 것처럼 하나님께 사랑받는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는 사람이 소명을 감당하게 된다. 헨리 나우웬은 소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소명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음성을 삶의 모든 순간에 듣는 것이다.”

소명은 사랑하는 것이다

영성가 리지외의 테레사(Therese of Lisieux 1873-1897)는 소명의 또 다른 예를 가르쳐 준다. 2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테레사는 20대에 주님의 일을 위한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며 묵상한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그녀는 다양한 소명을 꿈꾼다. 아씨시의 프란체스코를 닮은 사제의 소명을 감당할지, 아니면 바울처럼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소명을 감당할지, 아니면 예언자나 순교자의 소명을 감당할지 고민한다. 그녀의 관심은 온통 자신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테레사는 기도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테레사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큰 기쁨 가운데 이렇게 외친다. “나의 소명은 사랑하는 것이다. My vocation is love.” 테레사가 발견한 소명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소명은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더 테레사는 소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 붙어 있으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캘커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힘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매일 저녁 동료 수녀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은혜였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는 자신의 소명이 낮에 하는 사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주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의 모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오늘의 주제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이 지금 나에게 깨닫기를 원하시는 소명은 무엇인지 발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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