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더 나아가 부부관계는 복잡미묘한 것 같습니다. 결혼은 로또와 같다는 우수갯소리도 있습니다. 또 옛날 속담이나 격언들에도 그런 관계를 일깨워 주는 경구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원수는 집안에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연방 하원 의원을 했던 분이 있습니다 (그분 이름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지 얼마 후에 부인과 이혼했습 니다. 그후 무슨 비리를 저질렀는지 조사를 당할 때 그 증인으로 전 부인이 나섰습니다. 결국 그분은 하원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이럴 경우에 ”원수는 집안에 있다.”라는 속담이 맞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격언들도 많은데, 그 중에 몇 가지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 것이며, 여자는 남자의 용기를 기억하되 실수는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요구는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번뇌는 작아진다.” “돈을 보고 결혼하면 낮이 즐겁고 몸을 보고 결혼하면 밤이 즐겁다. 그러나 인격을 보고 결혼하면 항상 즐겁다.”

지금 이런 글들을 기록하고 있는 나는 꽤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늙어서 이런 요구들에서 비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젊었을 때에도 먹고 살기 바빠서 이런 고급스러운 생각을 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참 피곤해 보입니다. 우리 세대는 육체적으로 고달팠다면 요즘 세대는 정신적으로 피로해 보입니다.

모 공중파 TV 방송의 "인간극장" 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꾸밈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원주시 외곽의 허름한 흙집에서 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방송 제목은 "흔하고 귀하게 잡초처럼"이었습니다. 출연자는 남편과 아내와 딸, 모두 세 식구였습니다. 남편은 시집을 이미 여덟 권이나 낸, “시 문단”에서는 잘 알려진 시인이자 목회자였고, 부인은 시골에서 살기 때문에 집 주위와 산야에 있는 잡초를 식물도감을 통하여 빠삭하게 꿰고 있는 교회 반주자 겸 재야 식물학자였고, 딸은 미대 조소과를 나와서 집에서 공방을 차리고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미술학도였습니다.

전원 생활을 꿈꾸며 시골에서 사는 여인네들은 집 주위에 텃밭을 아기자기하게 가꾸고 각종 야채를 재배하여 그것으로 식탁을 풍성하고 신선하게 차립니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은 안뜰 그리고 산이나 들에 나 있는 잡초들을 이용하여 식단을 꾸몄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겨울만 빼고는 무궁무진한 식단의 재료들이 산지사방에 널려 있었습니다.

명아주로 만든 국이나 나물을 먹어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어렸을 때에도 이곳저곳에 각종 먹을 수있는 잡초들이 많았습니다. 명아주 나물, 싸리나물, 비듬 나물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입들이 고급화되어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자 주인공은 식물도감을 놓고 스스로 공부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풀만 보아도 그 이름과 식용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어떻게 조리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날로 먹어도 되는지, 삶아야 하는지 등등. 또 옷감은 모두 광목과 삼베뿐이라고 했습니다. 천연 염료로 직접 염색하여 이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 사람 모두 개량 한복 같은 편안한 옷들로 치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편해 보이고, 활동적이고, 색감도 좋아 보였습니다. 천연 염색 작업을 위하여 수개월간의 공부라는 수고를 투자했다고 합니다. 자급자족하는 생활인 것 같습니다.

어느 주일에 교회 가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원주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목회자인 남편이 설교를 하고 아내가 찬송가 반주를 하는 아주 조그마한 카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딸과 부인이 들고 있는 가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들인 광목천으로 만든 가방이었습니다. 명품 핸드백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어느날 부인이 남편에게 생활비로 월 백만 원씩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자동차가 있으니 개스비, 보험료 등의 차량유지비와 공과금과 식비 등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을 텐데 백만 원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 돈이면 한 달을 살 수 있을까요? 남편은 시를 쓰면서 그만큼 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편은 남편대로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잘못하면 말다툼으로 치닫기 십상입니다. 촬영하는 도중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이 마루에 있는 풍금 뚜껑을 열면서 제작진에게 말했습니다. "이를 거예요." "네? 누구에게요?" "하나님 아버지에게요." 제작진은 당황해서 되물었습니다. "네?!"

그때 딸이 나와서 보충 설명을 했습니다. "엄마가 말다툼한 다음 나와서 풍금 치는 이유를 아빠는 모를 거예요. 단순히 엄마가 마음이 풀려서 그런 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엄마는 지금 마음을 추스르고 있어요.“ 더 이상의 다툼은 비생산적이기 때문에, 엄마가 다툼을 멈추고 그 대신 풍금을 치면서 마음을 가라앉힌 것입니다.

풍금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피아노는 아예 없었고 풍금도 전교에 한 대 아니면 한 학 년에 한 대밖에 없어서 풍금 없이 노래를 배웠고, 풍금이 필요할 때에는 많은 학생들이 풍금을 들고 왔다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에 두곤 했습니다.

시인의 아내가 치는 풍금은 30년 전에 어느 지인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리가 붕붕거리는데도 아주 듣기 좋았습니다. 부인이 치는 찬송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이를 거예요 " 하는 말을 듣고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모든 감정을 상대에게 풀지 않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인 듯해서 부러웠습니다.
찬송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의 3절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잠잠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께 이를 거예요” 하는 말이 귓가를 맴돕 니다. 지금까지는 무심코 불렀던 찬송가였는데…

“그들에게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진실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 귀에 말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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