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도 훨씬 더 된 일입니다. 한국에서 사역할 때에 다른 교회에서 세미나 강사로 섬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이 발달했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전화로 위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목적지로 출발하였습니다. 최소 30분 전에 도착하는 것이 강사의 매너임을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밀리는 도로 상황 때문에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을 때에는 강의 약속 시간 10여 분 전이었습니다.

교회는 큰 길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주택 지역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이면도로로 들어섰습니다. 두 블록쯤 지나서였을까요? 당황스러운 것은 예상했던 곳에 있어야 할 교회 건물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이 근처가 맞는데...’ 다시 초조해진 마음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좁아진 도로에서 후진, 유턴, 좌회전, 우회전 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묻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남성 운전자들은 남에게 길을 묻는 것을 꺼려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교회 위치를 물었습니다. 그래도 자체 건물이 있는 교회인데 인근에 사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분은 자세하게 위치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길로 조금만 내려가서 우회전 하면 바로 그 교회입니다” 라는 식으로요. 친절한 안내에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교회 교인이세요?” 라고 물을 뻔했습니다. 약속 시간 3분 전. 드디어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 교회는 제가 찾던 그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야 할 교회는 OO 교회. 그런데 그 교회는 OO 감리교회였던 것입니다. 순간 올라오는 당혹감, 원망 그리고 초조함. 그분 나름대로는 정확했을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OO교회나 OO 감리교회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다 같은 교회인 것을요. 하지만 그분의 안내는 친절한 설명이었지만 정확한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안내로 인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날려야 했습니다.

지난 주의 일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설교하기 위해 전날인 토요일 저녁 LA 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그 교회는 선교사나 순례객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숙박하기로 하고 직접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미국 생활이 초보는 아니었고 운전할 차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담당 전도사님을 그 아파트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소를 전달받고 네비게이션에 입력한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드디어 아파트 주변, 하지만 전도사님은 약속된 지점에 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제대로 지켰는데…’ 전화를 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전도사님도 저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무얼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전도사님은 다시 주소를 보내 주었습니다. 다시 네비게이션에 입력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이 보내준 주소의 길 이름은 La Fayette Park Rd 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La Fayette Rd를 입력하여 운전했던 것입니다. 나의 듣기는 필요에 의한 듣기였지만 정확한 듣기도, 끝까지 듣기도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장황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이런 일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이런 소통의 왜곡과 부정확함이 불신과 불행을 만드는 대표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른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 먹으면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정보 제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생산하고 또 퍼다 나릅니다. 그들 나름으로는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는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또 누구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서둘러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세상에 참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레 판단하고 편견에 기초하여 해석합니다. 거기에 서두름까지 더해지면 결과는 명약관화합니다. 좋은 해결 방법은 중간 단계를 줄이는 것입니다. 위의 경우 인터넷에 올라 있는 주소를 그대로 카피하거나 포워딩 해주면 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스마트폰 화면의 주소를 누르기만 하면 그대로 GPS 길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달 단계와 해석의 단계를 줄이면 오해할 여지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내면세계에서는 분명 해석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영역에서는 위와 같은 기술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말씀의 왜곡 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기와 듣기 평가는 대입시험에서만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진실이 왜곡되어 전해지고 또 해석되고 있는지요. 물론 인간은 진실을 100%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의식하고 행동한다면 말하기와 듣기에 조금더 신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날 설교하러 단에 오를 때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정확하게 알고 경험한 말씀만 전달하게 해주십시오. 주님, 회중들이 저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선입견 없이 듣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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