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 대한 실망, 마뜩지 않은 일들로 인한 분노, 엄마 걱정으로 인한 우울, 예전 같지 않은 건강 상태로 인한 불안이 겹치자, 결국 몸의 이상이 나타났다. 심한 복통으로 주일 하루 내내 고생해야 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교통 혼잡으로 고생할 때에는 희한하게 답도 바로 주어진다. 하나님의 긴급 처방인가?

주일 밤에는 DVD로 시청한 미국의 기독교 영화 <War Room>이 ‘분노’에 대한 교훈을 주었다. 분노의 대상, 싸움의 대상은 나 자신도, 속상하게 만든 그 사람도 아니라는 거였다. 싸워야 하지만 싸움의 대상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싸우라는 영화 속에 두 시간 동안 머물렀다.

작년에 극장가에서 흥행한 기독교 영화라 해서 궁금했는데, 영화를 본 뒤에는 흥행이야말로 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세속적인 메타포도 채용하지 않은 채, 주제, 소재 모두 복음에 의거한 기도를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영화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영화는 그 자체가 신앙적 멘토와도 같았다.

주인공은 혼자 사는 할머니다. 베트남 전쟁 장면과 긴박한 느낌의 작전실(war room)을 보여 주며 영화는 시작되는데, 국립묘지를 찾아온 팔순의 노인 클라라는 14년간 결혼 생활 후에 남편이 전사하고, 홀로 40년을 살았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남편이 전쟁터의 작전실에서 일했다면서, 전쟁터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보고하고, 성경 속에서 답을 찾으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살아내는 작전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주인공들은 제약회사의 영업 사원 토니 조단과 부동산 중개사인 아내 엘리자베스, 그리고 줄넘기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딸 다니엘이다. 커다란 집, 자동차, 불룩한 통장, 온갖 소비재를 갖추었지만, 현재의 것을 지키고 도약하기 위해 부부는 바쁘다. 이기적이고 욕심 많고 지기 싫어하는 남편은 더욱 바쁘다. 한 달 중 절반은 출장이다. 대화는 줄고, 싸우는 일이 잦다. 남편은 아내에게 싫증을 느끼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달라진 남편이 밉지만 가정의 파멸이 올까 두렵기도 하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중개사 엘리자베스는 주택을 부동산에 내놓은 클라라와 만난다. 클라라는 엘리자베스의 얼굴에서 근심을 읽고, 그녀가 크리스천인지, 기도를 하는지, 믿음은 어느 정도인지를 쉴 새 없이 묻는다. 고객 예우 차원에서 마지못해 대응하는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답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 어느 정도의 믿음이라고. 클라라는 미지근한 커피를 그녀 앞에 놓는다. 미적지근한 신앙이 어떠한지 맛보라고 도전한다.

두 번째 만남에서 클라라는 가장 중요한 방이라면서 침실 곁에 붙은 옷장(closet)을 보여 준다. 옷 한 벌 걸려 있지 않은 자그마한 방의 벽에는 기도 제목을 적은 종이. 성경 구절을 적은 종이들이 붙어 있고 탁자 위에는 성경책이 놓여 있다. 일상에서의 영적 전투를 치르기 위한 작전실이라는 것이다.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엘리자베스는 클라라와 매주 만난다. 남편에 대한 분노, 가정 파탄에 대한 두려움,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놓는다. 클라라는 성경 구절을 적은 공책을 주며 기도할 것을 강권한다. 엘리자베스는 클라라를 흉내 내 자신의 옷장에 들어가, 기도 제목 한 장 벽에 붙여 놓고 기도를 해보려 하지만, 집중도 못하고 온몸이 뒤틀린다.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의자에 앉았다가 쿠션으로 바꾸었다가 결국 군것질까지 대령해 놓으니, 딸은 그런 엄마가 수상하기만 하다.

다음 주, 남편에 대해 서운했던 일들을 종이에 써보라던 클라라는 남편이 싸움의 대상, 즉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남편과의 싸움을 하나님께 맡기면 절대로 패배하실 리 없는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대신에 엘리자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가족끼리 멀어지게 하고, 관계보다 일이나 돈만 좇게 만드는 사탄(?)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드디어 남편의 비밀 데이트까지 알게 된 그녀는 폭발 일보직전이다. 그 동안 옷과 구두, 장신구들을 몽땅 치우고, 기도 제목이며 성경 구절들만 벽에 붙여둔 옷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대로 남편이 살게 해달라고 오래도록 기도한 뒤 일어나 소리친다. 이 집은 더 이상 부정적이고 악한 것들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이 명하신 길로 가지 않은 남편은 외도하려다가 복통을 일으키고, 회사에서도 부정 행위로 해고된다. 좌절하고 분노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아내의 호의적인 반응과 아내의 옷장 벽에 붙은 남편에 대한 기도문은 시나브로 남편을 변화시킨다. 아내에게 용서를 구한 남편 역시 영적 전투에 참가한다. 가정의 회복은 물론이고, 빼돌린 회사의 제품과 부당하게 취한 돈을 스스로 반납하면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용기를 보인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자동차의 타이어 펑크로 쩔쩔 매는, 자신을 해고한 사장을 도와 준 뒤 아내에게 말한다. “대우 받고 싶은 대로 행했을 뿐”이라고.

영화의 마지막에 “커다란 주택을 가득 채운 소비재들과 신앙을 회복한 남편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엘리자베스의 말은 오늘의 가정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일 것이다. 아들의 집으로 이사한 클라라가 고백한다. 자신도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영적 전투의 비결은 남편이 죽은 뒤에야 깨달았으며, 누구에겐가 전해 주기로 결심했을 때 엘리자베스가 나타난 거라고, 이제 엘리자베스도 영적 전투의 비결을 누군가에게 전해 주길 바란다고...

영화의 흥행에는 못 미치는 작은 기적이 우리집에서 일어났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코믹한 권선징악에다 극적 반전도 별로 없는 밋밋한 영화를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진지하게 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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