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교부 어거스틴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플라톤에 능통한 철학자였습니다. 후에 그는 신플라톤주의 이론으로 무장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최고의 영예를 누리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도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욕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16살부터 사회적 신분이 낮은 여인과 동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출세를 위해 그 여인과 헤어지고 14살의 로마 여자와 약혼했습니다. 하지만 법적 결혼 연령인 16세까지 2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여인과 동거했습니다. 그는 사회적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성적으로 난잡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괴로워했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는 ‘최고의 철학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도 절제하지 못하면서 내가 어찌 스승일 수 있나?’ 라고 자책했습니다. 

어느날 어거스틴은 밀라노의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밀라노의 주교로서 교회를 이끌며 명설교가로 이름난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연구를 위해 듣기 시작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는 그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싶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지금까지 마음대로 살았던 생활을 바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갈등을 심각하게 겪고 있을 때, 창문 밖에서 아이들의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어거스틴은 그 노랫말을 들으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힘을 느꼈습니다. 그는 서재로 뛰어 들어가 성경을 펼쳐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로마서 13:12-14)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어거스틴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음란하고 무질서한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에 사도 바울 다음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교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변화되는 은총을 받는 일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격언 중에 “새 옷을 입으려면 헌 옷을 벗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범한 진리 같지만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낡은 마음과 습관을 새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헌 옷은 세상의 옷이요, 세상의 옷은 궁극적으로 소망 없는 옷입니다. 참 생명의 길, 참 진리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감각 없는 옷입니다. 영원한 죽음과 심판으로 인도하는, 생명 없는 옷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은 생명 없는 옷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옷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육신을 따르게 합니다. 생명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며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반면에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생각을 하고, 생명과 평안에 이릅니다. 결국 영과 육은 생명 싸움이요 생명 문제입니다.

이제는 썩어 가는 옛 습관을 따르는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의 시민으로서 합당한 새 예복인 의의 옷, 진리의 옷,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에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그리스도의 모습은 없고 옛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입관, 고정관념, 해묵은 습관 등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옷은 몸을 보호합니다. 매서운 바람을 막아 주고 외부의 어떤 충격도 막아 주는 것이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면, 주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씀합니다. ‘새 것’ 은 겉모습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죄지은 인간이 아무리 새로워지려고 노력해도 근본적으로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죄 지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창세기 3장 이후로 지금까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놀라운 은혜와 변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지금 당장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겉모습이 예전과 같을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변했다는 의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 변화를 누가 일으킨 것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잘못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실수를 용납해 주실 것을 믿고 다시 새 옷을 입고 새 사람의 길을 힘차게 걸어 가야 합니다.

봄이 오면 얼어붙었던 대지 위에 새싹이 돋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앙상한 가지에도 새순이 돋습니다. 대지와 나무도 새 옷을 입습니다. 새 봄과 더불어 새로운 마음으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고 오늘의 환경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