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법륜 스님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스님입니다. 그분은 말씀을 조리있게, 듣는 사람이 쏙쏙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분이 진행하는 강연의 특징은, 청중들이 미리 질문 내용을 써서 보드에 붙이고, 무작위로 질문을 뽑아서 그분이 답을 하는 것입니다. 소위 즉문즉설의 형식입니다.

법륜 스님의 인기가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그분이 미국에 오면 어느 교회에서 교회당을 집회 장소로 빌려 준다고도 합니다. 또 주간지에도 그분의 즉문즉설이 실리기도 합니다. 최근에 “108배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즉문즉설이 실려서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답변 중에 “108번 부처님께 절하는 동안 108가지 번뇌가 사라지고 또 건강에도 좋으니 기독교인들도 하면 좋다”고 추천합니다. “108배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103배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건강에 좋다니 103배를 시도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다가 절을 합니까? 십자가에 대고 절을 할까요?

성경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을 결코 정신력을 결핍한 사람이 아니라 오만하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리석은 생각이 죄라고 쓰여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은 죄요, 비웃는 자는 사람들에게 가증한 자니라"(잠 24:9).

직장 동료중에 무슬림인 파키스탄 사람이 있었습니다. 월말에는 새벽부터 일해야 하는 날이 있는데, 그는 자기 자리의 콘크리트 바닥에 빈 박스를 깔고 동쪽을 향하여 다섯 번을 절을 합니다. 소위 동방 요배를 다섯 번 하는 것입니다.

또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 동료는 어느날 갑자기 머리를 빡빡 밀고 출근하였기에 까닭을 물어보니 모친이 별세하여 머리를 깎았다고 했습니다. 문득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절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를 드리라는 말뿐입니다. 성경에서 기도란 사람이 언어나 생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통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대화는 의사를 주고 받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므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우리의 요구를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는 영적 호흡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만 기도드려야 합니다(마 6:6).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만 합니다 (마 26:39).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요 14:14, 15:16).

그래서 기도의 자세에 대한 성경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 일어서서(출 33:10, 왕상 8:14)
• 머리 숙여서(창 24:26)
• 앉아서(대상 17:6)
• 무릎 꿇고서(왕상 8:54)
• 엎드려서(스 10:11)
• 손을 들고서(왕상 8:38, 딤전 2:8)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특히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 전심전력으로(렘 29:13),
• 순종하며(삼상 15:22, 요일 3:22)
• 믿음으로(막 11:24),
• 회개하는 마음으로(대하 7:14)
• 끊임없이(살전 5:17), 간절하게(마 7:7-11) 기도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마침 기도 잘한다는 그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보니 방언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우다다~" 하기도 하고, 때때로 “믿습니다”. “주시옵소서”를 반복하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잘하는 기도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울의 한 개척교회에서도  어느 장로의 기도를 듣다가 소름 돋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온통 교언영색뿐이었습니다.

나는 기도에 참으로 서툴지만 매일 아침, 그리고 자기 전에 기도를 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날이 내 앞에 있습니다.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이 주신 날 동안 믿음 안에서 지혜롭게 열심히 살아 영광의 본체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께 그리고 성령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또 사탄 마귀가 일체 침투하지 못하도록 도와 주십사, 영.혼. 육을 강건하게 해주십사 하고 간구를 드립니다. 이어서 주변 사람들의 사정을 낱낱이 거론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저녁에는 무탈하게 하루를 은혜 안에서 마친 것을 감사드리며 아침과 동일하게 기도를 드립니다.

또한 내 능력의 깊이가 무척 얕은 것을 알기에 나만의 기도를 드리는데 그것은 잠언 30:7-9의 말씀을 기도로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요청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그것들을 내게 거절하지 마옵소서. 헛된 것과 거짓말들을 내게서 아주 멀리 옮기시오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며 오직 알맞은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내가 배불러서 주를 부인하고 말하기를, 주가 누구냐? 할까 염려하오며 또는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할까 염려하나이다.”

그리고 매일 수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엄습해 와도 그것을 능히 피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생활기도는 데살로니가전서 5:16-18 말씀에 의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 하라.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일상적인 기도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생활의 일상적인 체험들을 기도로 바꾸는 것이고,
둘째는 생활의 일상적인 체험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며,
셋째는 생활의 일상적인 체험을 하면서 내내 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즘 빼놓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두 개나 더 있습니다. 즉 나를 데려가시되 뜸 들이지 마시고 바로 데려가 주십사 하는 기도가 그 첫 번째입니다. 미국 오기 전 한 동네에 살았던 할머니 권사님이 기도 드리는 도중에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기도』(오 할레스비 목사 지음)라는 책의 말미에서 어떤 부인이 아침에 소원하던 대로 일어나지 않고 잠 자는 중에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글을 읽고 기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생명 있을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뿐일세.” 이는 즐겨부르는 찬송가 가사입니다.

또 다른 기도는 다짐들을 실천하기 위하여 먼저 3초 동안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사 하는 것과 긴장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 뵙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도서』라는 책은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음에서 깨어날 때 나의 구세주가 나를 일으키실 것이고, 내 몸 속에 계신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며, 내 자신과 나의 눈은 낯선 사람이 아닌 나의 친구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가에서 하까지 주께 바치는 소원”이라는 어느 무명인의 기도가 있어서 옮겨 봅니다.
 

난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기를
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허락하시고
음 세대를 준비하며 살게 하소서
일락 향기 같은
음에 기쁨을 주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시고
보로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당할지라도
랑의 주님을 좇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하시며
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어
만하지 않고 성실함으로 섬기게 하시고
후에 주님께 착한 종이라는 칭찬 받게 하소서
나리아의 목소리보다는 마음으로 찬양케 하시며
인의 눈을 보기보다는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수꾼의 역할로 평생을 살게 하시며
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히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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