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로버트 로리(Robert Lowry) 목사는 필라델피아 태생으로 17세 때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버크넬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뒤에 침례교에서 안수를 받았고, 뉴욕과 브루클린에서 목회했습니다. 남북전쟁 때에는 시신들의 장례를 치러 주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수많은 부상자들을 발견하고, 장례식보다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주여, 이 생명들을 건져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면서 수많은 시체 더미 속에서 부상자를 구해 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지쳐서 시체들 속에서 기력을 잃고 죽어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부상자들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환상 속에서 “로리, 내가 살아 있느니라. 내가 어두움을 이기고 살아났느니라. 내가 지금 네 속에 살아 있느니라”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부활의 능력이 임하여 주님께서 그 안에 살아계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찬송가 “무덤에 머물러”라는 부활 찬송을 지어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부활 신앙만 있으면 무덤과 같은 어두움을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살아 있는 신앙으로 무덤을 뛰어 넘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겁내고 두려워하는 것이 고통과 절망의 끝자락인 죽음인데 그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부활입니다.

하지만 고난 다음에 죽음이 오고, 죽음 다음에 무덤이 오고, 그 다음에 부활이 옵니다. 고난 다음에 부활이 오므로, 고난이 없으면 부활도 없다는 것입니다. 잘 죽어야 부활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습니까?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죄를 이긴다는 것은 죄값을 치른 다음에 올바로 서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혼자서 할 수가 없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죄의 문제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값으로 사망이 왔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원한 미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죄값은 스스로 지불할 수가 없고 죄 없는 피를 죄값으로 흘려야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스스로 내려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지내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열매가 되셨습니다. 죄는 사람을 얽어매고 죄의 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왔습니다. 이 죽음을 없애고, 이 죽음을 죽여야 생명이 회복되는데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고 죽는 것이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지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셔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죄값을 치르고 생명을 되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살리는 복음입니다.

죄에서 시작하여 갈보리 언덕으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무덤으로, 그리고 부활로 이어집니다. 결국 생명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영원한 생명이 값을 지불하여 대신 죽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 신앙은 생명을 생명으로 유지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에 과감하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부활 안에 죄와 사망을 이기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독일의 고백교회 설립자 중 한 분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 죄목으로 2년간 옥중생활을 하다 1945년 4월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됐습니다. 히틀러 정권 치하에서 모두가 입을 다물었을 때에 분연히 일어서서 양심을 일깨운 신앙인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교수대로 끌려가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신앙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면서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분이 남긴 말은 ‘죽음이 곧 삶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질 때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부활 신앙은 죽어도 살기에 죽음이 겁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부활 신앙은 믿음을 관념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게 만듭니다. 부활 신앙이 있어야 우리의 신앙이 살아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살아 있는 믿음으로 믿고 나아갑니다. 그래서 부활은 구원의 증표이며 재림은 복음의 완성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없는 복음은 없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능력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생명을 살립니다.

부활 신앙은 오늘날 모든 면에서 약해져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으면 삶은 회복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삶이 힘들어 고통의 언덕 앞에서 낙심할 때, 신앙 생활의 은혜가 없고 방황할 때, 열정이 식어가고 형식과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을 때,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을 때,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고 예배 드리기 전과 예배 후가 변화 없이 같을 때, 기도를 해도 입술만 움직이고 찬양을 해도 뜨거움이 없을 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활 신앙을 유지하는 길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3-57)”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고백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과 동행하도록 성령님께서 도우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의 권세와 능력으로 생명력을 풍성하게 하셔서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이제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체험적인 신앙 고백으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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