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46

신앙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특별한 모습을 하나 소개해 줍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이사야는 하나님을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이미지는 참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말씀하시는 하나님,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하나님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폐

이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라고 절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절규를 문자 그대로 이해합니다. 실제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자취도 없이 숨어 버린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의 숨어 버림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졌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침묵만이 있습니다. 이 무서운 침묵, 하나님의 숨어버림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도 살아가면서 때때로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경험합니다. 삶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시고, 숨어버린 하나님의 모습만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사라지고, 나는 고난 속에 홀로 남겨진 듯한 하나님의 차가운 침묵의 순간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는 하나님의 이 숨어 버림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인들은 중대한 사실을 하나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숨어버림이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모습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것이 십자가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루터는 두 가지의 신학을 대조하면서 이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는 영광의 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의 신학입니다. 영광의 신학은 하나님의 능력, 힘과 권위만을 추구하는 신학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서 사람들을 먹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신학이 영광의 신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광의 신학 속에서도 존재하는 분이지만, 십자가의 신학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신 분입니다. 곧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가장 분명한 모습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문제는 영광의 신학만을 쫓아가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은혜, 능력, 힘, 영광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고난, 순종, 자기 비움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루터의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셨건만, 우리의 눈이 영광의 신학에 가려 있어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선 방법

결국 하나님의 은폐는 나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방법이 나타날 때 경험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숨어버린 것이 아니라, 나의 눈이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사람들은 힘과 권력을 가지고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세상적인 메시야를 원하고 있었기에,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기대를 넘어서는 십자가의 낯선 방법 앞에 우리는 하나님이 숨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시지만, 우리의 눈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나의 욕심과 고집과 계획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나의 눈이 영광의 신학만을 쫓아가고 있을 때, 우리보다 높고 높으신 십자가의 낯선 방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숨어 버림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숨어 계시다고 생각할 때에 나의 방법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방법이 드러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영광과 승리에만 관심하고 있는 내가 십자가의 길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죽음을 앞둔 감옥에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 산다.” 본회퍼의 유명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특별히 마지막에 있는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는 말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감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숨어 버린 것 같은 순간에도 내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낯선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간이라고 신뢰합니다.

부활의 승리를 준비하는 침묵

숨어 계신 하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묵상할 또 다른 주제는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외침,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에 왜 하나님은 숨막히는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까?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나를 버리셨습니까?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 나의 이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어야 합니까?"라는 우리의 외침에도 왜 하나님은 차가운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것입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침묵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예수님과 함께 아파하시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예수님을 버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함께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도 함께 아파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그게 뭐, 대수인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것밖에는 못하시나? 그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침묵의 두 번째 의미를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부활을 준비하는 침묵이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부활의 새벽,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승리로 터져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바로 이 부활의 승리를 준비하는 침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침묵 속에 묵묵히 우리를 위해 일하시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십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인 것 같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은 부활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은폐에서 우리를 위한 엄청난 은혜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은폐는 인간적인 방법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방법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숨어 버린 것같이 느껴질 때, 내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방법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침묵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침묵이고, 부활의 새벽을 준비하는 침묵입니다. 내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 나를 위해 함께 눈물을 흘리시고, 나를 위해 새로운 길을 여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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