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47 “기다림의 영성 1”

앞으로 3회에 걸쳐 기다림의 의미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는 동안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 기다림이라는 것에 결코 우리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아마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일 겁니다.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묵상하다보면, 이 기다림이 우리의 신앙에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수많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늘 첫 번째로 묵상하는 인물은 하박국입니다.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하박국 3:1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박국은 하나님께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의 대답을 지금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박국은 보초들이 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하늘을 바라보며, 두 눈을 부릅뜨고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박국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박국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바벨론 제국을 들어서 남유다를 징계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하박국은 이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남유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을 만큼 잘못은 하였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더 악한 바벨론을 통해서 남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하시는지 하박국은 이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결국 하박국은 하나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하박국이 들은 대답은 악한 바벨론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남유다를 회복시키는 은혜를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회복의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박국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박국 2:3의 말씀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 약속을 붙잡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기다림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기다림이 어려운 이유는 이 약속을 붙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 마디』라는 책에서, 한 전문 산악인의 이야기를 소개해 줍니다. 산에서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조난당한 현장에서 죽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합니다. 마을 가까이 내려와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자기가 마을 근처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산속을 헤매다가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려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자신이 마을 가까이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들은 조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고 합니다. “조난을 당해서 버티다가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텨라.” 이 버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버티는 사람입니다. 승리하는 사람도 결국은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버티도록 만들어 줍니까? 무엇이 우리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까? 그것은 바로 오늘 하박국이 들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으니,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약속을 붙잡는 사람만이 버틸 수 있습니다.

기다림, 약속이 자라나는 시간

그런데 “더딜지라도 기다리라”는 말씀은 사실 별로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굳이 약속을 더디게 이루어 주시고, 그동안 우리를 기다리도록 만드시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딘 시간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저 멈추어진 시간이 아닙니다. 더딘 시간은 약속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는 시간입니다. 차동엽 신부는 『무지개 원리』라는 책에서, 중국산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줍니다. 극동 지역의 사람들은 중국산 대나무를 많이 심는데, 중국산 대나무는 나무를 심고 물과 거름을 주어도 4년 동안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5년째 되는 해에 놀랍게도 5주일 동안 높이가 약 27.5m나 자란다고 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4년 동안 자라지 않다가 5년째 되는 해에 5주일만에 27.5m 자란다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해 주면서 차동엽 신부는 이렇게 묻습니다. “과연 이 대나무는 5주일 동안에 27.5m가 자란 건가요, 아니면 5년 동안에 자란 건가요?” 정답은 당연히 5년 동안 자란 것입니다. 5년의 기간 동안 씨앗은 싹을 틔우고,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여기에 기다림의 비밀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가 현재에 심겨져 있다는 것을 믿을 때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미래에 있을 무언가 마술적인 어떤 것,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어떤 은혜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씨가 이미 내 안에 시작되고 자라나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다림에 대한 오해는 미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모든 대상이 미래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 고통스러운 시간, 빨리 지나가고 싶지만 더디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으로만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재는 약속이 이루어져가고 있는 한 부분입니다. 현재는 약속의 씨앗이 심겨져서 자라나고 있고, 하나님이 신비하게 일하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 기다림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기다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믿음의 사람은 비록 하나님의 약속이 더딜지라도 이 약속이 자라나고 있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의인은 기다림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왜냐하면 기다림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내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신비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회복의 약속을 완전하게 이루실 그날까지 믿음의 기다림으로 승리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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