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지음 / 돌베개 펴냄

 
지난 1월 15일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별세한 뒤 2월 22일에는 서화에세이집 『처음처럼』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07년에 글과 글씨와 그림을 편집해 출간했던 책의 표지에 '신영복의 언약'이라는 부제가 추가되었다. 또한 첫번째 책의 원고에 90여 편의 새 원고가 추가되었다. '꿈보다 깸이 먼저입니다 /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습니다 /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총 4부에 215편의 서화에세이들이 첫번째 책과 구성을 달리해 담겼다. 편집 당시 저자의 병세가 위중해서 서문은 첫번째 책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출판사측은 설명했다.

서화에세이라는 형식은 감옥에서 조카들에게 보내는 엽서 귀퉁이에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글과 그림이 나란히 놓임으로써, 언어의 관념성과 경직성이 그림으로 하여 조금은 구체화되고 정감적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구나 절삭된 글 특유의 빈 곳을 그림이나 글씨가 조금이나마 채워 줌으로써 그 긴 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면서, "이러한 가슴의 공감들이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인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시 발에 이르는 긴 여정의 새로운 시작이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지향해야 하는 여정이란 결국 개인으로서의 완성을 넘어 숲으로 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발'은 삶의 현장이며, 땅이며 숲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는 소망을 서문에서 피력했다.

이 책은 ‘처음처럼’에서 시작하여 ‘석과불식’으로 끝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희망의 언어’입니다. 무성한 잎사귀 죄다 떨구고 겨울의 입구에서 앙상한 나목으로 서 있는 감나무는 비극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그 사지 끝에서 빛나는 빨간 감 한 개는 ‘희망’입니다. 그 속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그 봄을 위하여 나무는 잎사귀를 떨구어 뿌리를 거름하고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신영복(1941~2016)은 경남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대 강사를 역임하고, 육사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신영복의 엽서』,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청구회 추억』, 『변방을 찾아서』,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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