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일곱 가지 죄 중에서 ‘교만이 모든 죄악들의 어머니’라고 말해

조지 워싱턴의 위대한 겸손을 생각하면서 이번호에는 죽음에 이르는 죄, 교만을 생각해 봅니다.

1. 교만이 낳은 참사, 타이타닉

 
세계 최대의 여객선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4일, 대서양 횡단을 목적으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타이타닉 호의 출항에 집중되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 최고급 시설을 갖춘 초호화 유람선이었습니다. 길이 259.08m 깊이 19.66m, 폭 28.19m, 총 46,328톤의 철선이었습니다. ‘침몰이 불가능함’이라는 홍보용 문구가 통용되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처녀 출항한 날의 날씨는 아주 맑았고, ‘물 위에 뜬 궁전’의 호화 시설들은 승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앞길에 빙산이 떠다니고 있음을 알리는 첫 무전이 들어온 때는 오전 9시였습니다. “북위 42도,서경 49∼51도 바다에 떠돌이 빙산이 있음. 캐로니아 호로부터.” 라는 무전 연락이 들어왔고, 정오에는 발틱 호로부터 비슷한 무전이 들어왔으며, 오후에도 타이타닉 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캘리포니안 호로부터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러나 ‘타이타닉 호’는 빙산을 향해 다가갔고, 항해사는 한참 후에 선장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전방에 빙산이 있다는 무전을 받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설마 이‘타이타닉 호’가 빙산 따위에 눈 깜짝하겠습니까?” 선장도 맞장구를 치며“하나님이라도 이 배를 어찌할 수 없을 걸세. 항해를 계속하게!”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배에는 타이타닉 호를 제작한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 회사의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와 설계사 토머스 앤드루스도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 무전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항해사와 당번들에게 바다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속도를 늦추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영국은 그야말로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었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신족(巨神族) Titan의 이름을 따서 타이타닉 호라고 명명할 정도로 자긍심이 대단했습니다. 절대로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큰소리쳤습니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은 건조되기 전부터 잉태되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항공 운송의 막이 열리지 않았던 시대에 타이타닉 호를 만든 화이트 스타 라인과 큐나드 라인(Cunard Line)은 대서양 운송의 경쟁사였습니다. 큐나드 라인이 세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신형 여객선 루지타니아 호를 건조한다는 소식을 접한 화이트 스타 라인은 부랴부랴 타이타닉 호를 만들어 출항을 강행한 것입니다. 타이타닉 호는 대서양 운송의 기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경쟁심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는 “최단 시간 내에 뉴욕에 도착해야 한다”면서 스미스 선장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래서 예년에 비해 기온이 현저히 낮다는 기상 보고나 항로에 빙산이 적잖이 발견되고 있다는 다른 선박들의 무선 연락에도 불구하고 배는 최고 속도로 달렸습니다. 빙산과 충돌한 운명의 밤에도 안개가 잔뜩 끼었건만 관측을 맡은 선원은 망원경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빙산 따위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자만심에 들뜬 승무원들을 태우고 타이타닉 호는 22노트라는 엄청난 속도로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만심의 상징이 ‘20세기의 비극’ 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대서양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처녀 항해에 나선 지 겨우 4일 17시간 30분만에 승선한 2,208명 가운데 1,513명이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거대한 빙하와 충돌하면서 명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배는 심해로 가라앉았습니다.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타이타닉 호는 크기, 호사스러움,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 그야말로 세계 최고였기에 사고의 충격은 더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미약하며, 인간의 교만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 사건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타이타닉호만 침몰한 게 아닙니다. 영존하리라던 나치 체제도, 공산주의도 줄줄이 종말을 고했습니다. 유신 체제도 무너졌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을 모르지만, 사상과 이념, 권력과 재물 등 이 땅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교만엔 재난이 따르고 불손엔 멸망이 따른다”(잠언 16:18, 공동).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개역). “오만은 죄의 시작이므로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엄청난 벌을 내리시며 그를 멸망시키신다” (집회서 10:13). 하나님은 오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시며, 그들을 벌하십니다. 교만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교만한 사람만 멸망하면 좋은데 교만한 사람 때문에 그가 속한 공동체, 그가 속한 나라와 민족이 함께 멸망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타이타닉호는 교만한 선주와 선장, 승무원으로 인해 1,513명이 목숨을 잃는 대참사를 겪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교만한 정치가들 때문에 역사가 혼란에 빠지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만의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개인과 집단, 국가와 민족 존망의 문제요, 하나님 앞에선 신앙인으로서 심각한 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 교만, 일곱 가지 큰 죄악의 근원(Seven Deadly Sins)

전통적으로 교회는 일곱 가지 큰 죄악, 죄악칠종(罪惡七宗)을 이야기합니다. 그 일곱 가지 죄는 교만, 질투(시기), 분노, 탐심(탐재), 탐식, 게으름(나태), 정욕입니다. 이것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Seven deadly sins) 또는 일곱 가지 중죄(Seven cardinal sins)라고 했습니다. 일곱 가지 죄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4세기경의 그레고리 대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한 숫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범하는 모든 죄를 일곱 가지 죄가 대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중세기에 경건을 연습하던 사람들은 일주일을 단위로 한 가지 죄악과 씨름하면서 그 죄악을 날마다 극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일곱 가지 죄는 날마다 우리가 씨름하고 극복하는 죄를 상징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일곱 가지 죄 중에서 ‘교만이 모든 죄악들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교만은 정신적, 도덕적 조건으로 모든 죄악에 선행합니다. 다른 모든 죄악들이 교만에서 나옵니다. 교만이 질투를 낳고, 교만이 분노를 낳고, 교만이 탐심을 낳고, 교만이 탐식을 낳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요 뿌리입니다.

3. 하나님을 잊으면 교만할 수밖에 없다.

왜 인간은 교만(pride, hubris)할까요?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면 인간은 곧 교만하게 됩니다. “오만은 주님을 저버리는 데서 시작되고 사람의 마음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질 때 생긴다”(집회서 10:12). “행여나 교만한 생각으로 너희 하나님 야훼를 잊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나님께서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주시지 않았느냐?”(신명기 8:14)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아침이면, 유대인 남자들이 검정색 모자를 쓰고 회당에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대인 남자들은 키파(kippah) 또는 야르물케(yarmulke)라고 불리는 모자를 반드시 씁니다. 머리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머리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머리 위에 더 높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면,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교만해집니다. hubris는 그리스어로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오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죄이며, 죄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김균진은 인간의 교만을 죄의 전체라고 말하면서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서 볼 때 근본적으로 죄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교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자로서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자기를 낮추어서 인간의 육이 된다... 철저히 하느님에게 순종하며 사람들 가운데서도 천한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난다... 그는 자기를 하나님에게 내어 맡기고 죽기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며, 여기서 인간의 근본적인 죄를 인식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되는 반면,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시는 반면 인간은 자기를 무한히 높이고자 한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이 약속하는 인간의 모습 , 곧 “하나님과 같은 인간”(Homo sicut Deus)이 여기서 밝혀진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이것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이다... 이런 의미를 가진 교만은 죄의 일부가 아니라 틸리히가 말하듯이 ‘죄의 전체’라고 볼 수 있다.”(김균진, 『기독교 조직신학 II』, 연세대학교출판부 : 서울, 1989. p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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