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주의의 기독교판인 교회성장운동이 ‘건강교회운동’으로 바뀐 지는 퍽 오래되었다. 슐러 목사가 부끄럽고 초라한 모습으로 목회마당으로부터 퇴장 당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갈3:3) 초대형교회 거인 목사들이 줄줄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성공주의 목회의 장례식이 아닌가. 그렇다고 성공주의 반대자들이 날뛸 일은 전혀 아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성공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꼭 물어보는 말이 하나 있다. 당신은 정말 무슨 일이든지 실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뜻이냐? 당신 자녀들이 무슨 일에나 연속하여 실패하면 짝짝짝 하고 박수를 치겠는가?

예수님은 인류 최대의 성공자이셨다. 예수라는 이름이 그분 탄생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얼마나 큰 성공인가. 예수님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했던 사람, 곧 순교자들이 가장 많은 것만 보아도 그분의 성공은 충분히 입증된다. 예수님을 섬기는 건물들이 제일 많다는 것, 그분께 헌납된 재정이 제일 많다는 것, 예수님을 연구하여 써놓은 책도 제일 많고, 예수님을 가르치는 학교가 제일 많다는 것, 예수님이 주인공인 성경이 가장 많이 보급된 책이라는 것 등. 불과 3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가르치고 행동하셨는데도 어느 누가 감히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셨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은 실패주의자 아니 참패주의자라 이름 붙을 정도로 실패의 쓴 잔을 연속하여 마시셨다. 가족과 친척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동네 사람들은 낭떠러지에서 밀쳐 죽이려고 했다. 협력자들보다도 반대자들이 훨씬 많았다. 특히 사회 고위층 지도자들이 그를 제거하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 중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탱자가시로 된 모자를 쓰셔야 했고, 온몸에서 생피가 흐를 정도로 채찍을 맞았다. 침뱉음을 당했고, 감옥에 처박혔고, 온갖 모욕을 당했고, 제자에게 배신당했고, 사형판결을 받았고, 십자가에 공개처형되었다. 실로 그의 짧은 생애는 실패, 실패, 또 실패로 점철되었다.

만약 그것으로 끝났다면 예수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완전실패했다고 세상 사람들이 단정했던 그 순간에 바로 ‘다 이루었다’ 곧 ‘나는 성공했다’고 명백하게 선언하셨다(요 19:30). 십자가 처형이 바로‘최대 성공을 목표로 한 의도적 실패’였다. 그런 뒤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늘의 태양처럼 확실한 성공을 입증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지으셨다. “모든 고난은 아기 낳는 것과 같다”(요 16:21-23).

예수쟁이들은 누구와 경쟁하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성공주의 깃발을 휘날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성공적 실패주의와 실패적 성공주의’ 깃발을 휘날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고통을 성공의 자본으로 삼으셨다. 세상 사람들은 실패를 걸림돌(stumbling stone)이라 여기지만, 예수쟁이들은 실패조차 디딤돌(stepping stone)로 삼고 더욱 대담하게 전진해 나아간다. 참패의 폭이 클수록 성공으로 가는 더욱 튼튼한 디딤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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