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일자 조선일보 토요일 섹션 제1면 전체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지휘자였던 한태근 선생님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일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 한태근 선생님은 우리가 잘 아는 ‘꼬부랑 할머니’라는 노래를 지은 분입니다.

어느 날 한 선생님의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와서 검사를 받아 보니 방광암이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에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하는 한 선생님의 제자 최영득 박사가 집도의가 되어 선생님을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복을 해보니 방광 전체가 암으로 뒤덮여 있어서 칼을 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수술이 불가능해서 다시 배를 닫고 말았습니다.

최영득 박사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심하게 암으로 뒤덮인 경우는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최 박사는 한태근 선생님에게 “이제 하실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태근 선생님 같은 경우는 길어야 1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합니다.

한태근 선생님은 생사의 기로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제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십시오.” 당시 한태근 선생님은 성경을 가지고 찬송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찬송으로 부를 수 있도록 성경찬송가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일을 끝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태근 선생님은 성경찬송가 작곡을 계속하면서 항암 치료를 받다가 점차 병세가 호전되어 수술을 세 번 받고 지금까지 10년을 넘게 살고 계십니다.

금방 생명이 다하여 세상을 떠날 것 같았던 분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 마침내 성경 내용으로 만든 찬송가 300곡을 완성했습니다. 완성은 했지만 제작비가 없어 기도했는데 어디선가 ‘꼬부랑 할머니’ 노래를 쓰겠다고 하면서 사용료 700만 원을 지불해서 그것으로 성경찬송가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한 선생님은 ‘찬양 치유법’이라는 책도 쓰셨습니다. 한 선생님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치료해 주시고 응답해 주셨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셨다는 간증이 기독교 신문도 아닌 ‘조선일보’한 면 전체를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크게 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한계에 부딪쳐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전심을 다하여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급하고 큰 일을 겪을 때는 당연히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급한 때 하나님께 간구하여 필요를 채우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평상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다 보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자녀는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부모님께 달라고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요구에 계속 응답해 줍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의 필요를 채워 주는 대상만이 아닙니다. 그것을 뛰어넘어 부모와 자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생명을 나눈 관계입니다. 무엇이라도 나눌 수 있고, 심지어 부모의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생명 관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과 생명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까지 주실 만큼 사랑하는 생명 관계입니다. 이 생명 관계속에서 생명의 교환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인간이 죽을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셔서 죄사함을 받아 우리를 영원히 살려 주셨습니다. 이 생명 관계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 관계는 인생의 최우선적인 관계를 뜻합니다. 혈관을 통하여 피가 순환하여 우리의 몸을 살리듯이, 사랑도 생명도 은혜도 능력도 이 생명 관계를 통하여 흘러갑니다.

이 생명 관계를 유지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생명 관계를 유지하고 그 생명이 흘러갑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생명이 이 땅으로 흘러들어 땅의 모든 것을 살립니다. 그래서 생명 관계는 세상의 조건과 환경, 문제를 초월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육체가 숨을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또한 영적인 호흡을 하지 않으면 영이 약해지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됩니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6)고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라고 하면서, 항상 쉬지 않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엡 6:18)하라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아말렉이 쳐들어와 이스라엘 백성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를 의미하는데,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힘이 들어서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기도하는 손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과 역사가 달려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에는 이기고 승리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쉬거나 멈추면, 악한 마귀가 기세등등하게 덤빕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싫어도 기도해야 하고, 피곤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줄 몰라도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을 불러야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며 신앙생활에 있어 근본 사역입니다. 기도하기 싫고 힘들 때, 기도의 흥미를 잃어버릴 그때에도 기도하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기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늘 기도하면서 일하고 살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십니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거부하고 특권을 방치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에게 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야훼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라고 말했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R. A.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 1856∼1928) 박사는 “만일 우리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게 된다면, 노력은 많이 하나 성취는 적고, 예배는 많이 드리나 회심도 적고 은혜도 적으며, 활동은 많이 하나 효과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것은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지식은 다시 쌓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기도 시간만큼은 영원히 찾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채 흘러간 세월은 돌이키거나 되찾을 수 없습니다. 생명 관계에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쉴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특권으로 늘 승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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