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구약의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을 오늘날 우리가 죽어 요단강 건너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의 예시인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땅에서 경험하고 누려야 할 안식이고,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우리에게 이런 안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창세 전의 목적이었음을 성경 말씀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은 이 복음이 우리를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게 했는지를 알고, 경험하고, 누리고, 안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식교에서 말하는 무슨 안식일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 하나님 차원의 안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가 위에서 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먼저 복음이 우리를 어떤 존재가 되게 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의 성경구절들이 이것을 말해 줍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5–17).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4–7).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 라고 했습니다. 믿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원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 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함께 부활하게 하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셔서 우리를 예수님과 똑같이 여기셨으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는 놀라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 라는 말은 ‘공동 상속자(Joint Heirs)’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우리를 차별하시지 않고 예수님과 똑같이 대우하신다는 말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복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게 말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한자의 福이 아닙니다. 그런 복은 예수 믿지 않아도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듯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福으로 알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의 목적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그런 시시껄렁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아주 좋다고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좋게 말하시는 존재는 온 우주에 단 한 명 곧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또한 예수님과 똑같이 좋게 말하신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똑같이 여기시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주시며 우리를 좋게 말하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시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문제는 과연 복음을 통해 우리가 이런 존재가 되었음을 알고 예수님의 몸인 교회로서 이것을 누리고, 경험하고, 안식하고, 드러내는 삶을 지금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신앙생활이 아니고 교회가 공동체로서 누리는 삶입니다. 이런 삶은 제도권 교회로는 불가능하고 신약성경이 말하는 유기적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라야만 가능합니다. 물론 교회의 지체인 개개인이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유기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겠지요.

과연 오늘날 교회 안의 지체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실감하고,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유기적인 공동체를 살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런 삶은 죽은 다음에나 가능하지 이 세상에선 불가능하다는 믿음으로 투철한 사람들이 교회에 가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믿음은 좋은데 잘못된 믿음이니 문제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이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오해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장례식에서 ‘요단강 건너’ 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들이 애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서도 애굽에서 나온 장정 60만 명 중 단 두 명만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사람들 절대 다수가 못 들어간 가나안 땅이 천국을 가리킨다면 죄 사함 받은 그리스도인 절대 다수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얘기인데 말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장정 60만 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만 빼고 나머지가 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들을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시고 38년 동안이나 더 광야에 묶어 두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고민에 빠지는 것이 정상 아닐까요? 이런 사실에도 가나안을 오로지 천국을 예시한 것으로 주장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을 예시한 것이 아니라, 앞에서 살펴 본대로 이 땅에서 교회 공동체가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은 예수님의 공동 상속자로서 경험하고 누리고 안식하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이라는 것을 우선 분명히 알아야 그런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죄짓고 살던 우리를 해방시켜 구원하신 이유임을 알아야 그런 차원의 삶을 사모하고 찾게 될 텐데, 그걸 모르고 죽은 후의 천국만 사모하고 예수님의 재림만 기다리고 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그럼 애굽에서 구출되어 광야로 나온 옛 이스라엘 백성 절대 다수는 어째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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