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다른 도시를 방문하고 집에 돌아와 불을 켠 순간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실내가 작은 나방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파리 만한 나방들이 천장, 벽, 빼꼼히 열려 있는 옷장의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는데, 인기척이 나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통에 실내는 마치 2차대전 공중전이 일어난 것 같았다. ‘우째 이런 일이? 혹시?’

냉장고 옆에 있는 쌀포대를 주목했다. 얼마 전 마트에서 15파운드짜리 쌀을 샀다. 포장지를 개봉하자 고유한 쌀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도정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백미는 빼어난 몸매에 쌀눈이 어우러져 마치 화장품 모델 같다. 가수 홍순관은 ‘쌀 한 톨의 무게’라는 노래에서 나락 한 알 속에 농부의 새벽도 숨어 있고, 바람과 천둥, 비와 햇살 그리고 우주가 들어 있다고 읊조린다. 진지함과 감사의 자세로 밥을 먹어야 할 것 같다. 광고의 한 장면처럼 막 지어낸 밥 한 술 위에 햄 한 조각이나 김 한 장을 올려 놓고 입안에 넣으면 진지함은 금세 즐거움과 행복으로 바뀐다. 그렇게 한 끼 밥을 잘 지어 먹었고 그게 다였다.

집안에 습기도 없고 환기도 잘 되기에 쌀포대를 개봉한 채 집을 비웠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일주일 동안 쌀벌레(쌀바구미)가 생겼고 대부분 나방이 되었던 것이다. 쌀포대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도 까만 벌레들이 쌀 위를 기어다니고 있었고, 나방들은 포대 벽에 앉아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살림살이의 경험이 없다시피 한 내게 이 모든 것이 놀랍고 이해도 안 되었다.‘불과 몇일 사이에 어떻게 벌레가 생겼을까. 또 어찌 저렇게 빨리 성장해 나방이 될 수 있었을까?’내 눈엔 그저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 창조 사건 같았다. 또 하나의 걱정은 ‘이제 이 쌀을 먹을 수 있나, 아님 모두 버려야 하나?’하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지인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답변들은 이제껏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느냐고 무안을 주는 것 같았다. 유익한 정보도 얻었다. 쌀바구미는 곡물이나 죽은 나무 껍질 등에 알 상태로 서식하다가 기온이 따뜻해지면 부화하여 밖으로 기어나온다고 한다. 육안으로 쌀알밖에 안 보였지만 포대 안에 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깨끗하다고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쌀벌레는 마늘 냄새를 싫어한다고 해서, 통마늘 너덧 개를 포대 안에 넣어 보았다. 나방들은 포대 밖으로 날아가고 포대 안의 쌀 내음은 강한 마늘 냄새로 바뀌었다. 구석구석 살충제를 뿌리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내보내며 나방들을 제거했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제거 작전은 말 그대로 한여름밤의 생쇼였다.

상태가 양호한 쌀들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용기에 옮겨 담아 서늘한 곳에 두어라, 햅쌀을 묵은 쌀과 절대 섞지 말라는 정보도 눈에 띄었다. 요즘은 개미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음식물을 잘못 보관하거나 먹고 난 자리를 깨끗이 치우지 않으면 개미 군단이 몰려온다. 어디서 어떻게 알고 오는지 기가 막힐 정도이다. 그래서 청결 또 청결을 주문처럼 외치고 산다.

없는 것 같은데 있는 것이 있다. 죄가 그렇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지성인들, 종교인들은 모두 깨끗해 보인다. 다소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성찰과 반성의 과정을 거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고 영의 눈으로 보면 그 누구도 순결하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유충이나 세균이 존재하듯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는 죄의 유정란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조금만 지저분하면 어디선가 죄의 개미떼들이 몰려온다.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말이다.

알이 깨어나 유충이 되고 그 유충이 쌀알을 갉아먹듯이 우리의 영혼도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죄의 유충들에 의해 파괴된다. 포대를 개봉한 다음 내용물의 관리를 위해 온도, 습도, 빛 등의 조건들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필요하면 죄가 싫어하는 예방책 또는 해결책을 두어야 한다. 통마늘이나 숯처럼 말이다. 영적 삶에 있어서 그것은 말씀이고 십자가이다. 삶의 자리도 늘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문득 이스라엘에게 하신 “진멸”의 명령이 생각났다. 죄의 속성과 전염성, 영향 등을 알고 계셨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명령을 하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멸해야 할 대상이 물질이나 사람인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향한,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곳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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