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기구(UNHCR)는 위기에 처한 시리아 긴급 구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011년 3월 내전이 시작된 이후 어린이 14,000명을 포함해 시리아 국민 29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시리아에는 도움이 필요한 6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있다고 한다.

UNHCR에 따르면, 전 세계에 난민 신분으로 흩어져 있는 시리아 어린이는 110만 명을 넘는다. 그 중 75%가 12세 이아의 어린이들이다. 전체 난민 중에서 어린이들이 52%를 차지한다. 현재 난민의 대부분은 요르단, 레바논 등 시리아 인접국에 머물고 있다. 이 두 나라에만 시리아 어린이 난민의 60% 이상이 체류 중이다.

기독매체 ‘아름다운 동행’ 9월 1일자에선 올림픽에 출전한 시리아 난민 수영선수와 난민 5백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은 사건에 관한 TED 강연을 다루었다.

2016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에 올림픽기를 가슴에 달고 난민 선수 10여 명이 출전했다. 추대엽 필자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리우 올림픽 수영 자유형과 접영 종목에 출전한 17세의 유스라 마르디니는 시리아의 촉망받는 수영 선수였다. 2015년 어느날 그녀는 시리아 분쟁을 피해 언니와 함께 작은 고무보트에 올라 시리아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20여 명이 탄 고무보트의 엔진이 꺼지자, 수영을 잘하는 유스라와 언니가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온힘을 다해 헤엄치며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 해안까지 고무보트를 밀어서 모두의 생명을 구했다.

유스라 마르디니가 난민선수단으로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UNHCR 공보실 대변인이었던 멜리사 플레밍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UNHCR이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필자는 멜리사 플레밍(Melissa Fleming)이 2015년에 했던 TED 강연을 언급했다.

아래 글은 멜리사 플레밍의 강연 전문을 본지 기자가 번역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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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500명을 태운 배가 가라앉은 이야기

Doaa
19세의 시리아 난민 도아(Doaa)는 이집트에서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리아로 돌아가 폭격으로 산산조각 난 사업을 일으킬 생각만 했다. 이들을 이집트로 내몬 전쟁은 4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을 환영해 준 이집트 사회는 이제 그들을 부담스러워 했다.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그녀를 납치하려고 했다. 분쟁 전엔 미래를 꿈꾸었던 도아는 이제 모든 것이 두려웠다.

한편 그녀에게 희망이 생겼다. 바셈 시리아 난민 친구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바셈은 그녀에게 말했다. “유럽으로 가자. 안전한 피난처를 찾자. 나는 일하고 너는 공부할 수 있어. ‘ 바셈은 도아의 아버지에게 결혼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유럽으로 가려면 악명 높은 밀항알선업자들의 손에 목숨을 맡기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도아는 물을 무서워했고 헤엄칠 줄도 몰랐다. 2014년 8월. 지중해를 건너다가 이미 2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도아와 바셈은 결심을 하고 밀항알선업자에게 한 명당 밀항 대가로 2,500달러씩 지불했다.

토요일 아침 그들은 버스를 타고 해안에 도착해 낡은 어선에 올라탔다. 배 밑에 300명, 위에 200명이 빼곡히 탔다. 시리아인, 팔레스타인인, 아프리카인, 무슬림과 크리스천, 그리고 100명의 어린아이들이 탔다. 가족들끼리 붙어 있었다. 도아는 다리를 구부려 가슴에 대고 바셈은 도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지치고 불안해진 승객들은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었다. 선장은 입을 닥치라면서 욕을 퍼붓더니 “16시간 안에 이탈리아 해안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조그마한 배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배 위에는 10명이 타고 있었는데, 난민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막대기를 던지면서 자기들의 배로 옮겨 타라고 했다. 아이들 걱정에 부모들이 거절하자 화를 내며 달려가 버린 배가 30분 뒤에 돌아와 배 옆구리에 구멍을 내는 거였다. 도아와 바셈이 앉아 있던 자리의 바로 밑이었다. 그녀는 “고기밥이 되게 해주겠다.” 는 그들의 외침을 들었다. 그들은 배가 뒤집혀 가라앉자 마구 웃었다.

배의 밑부분에 있었던 300명은 그대로 수장되었다. 도아는 가라앉은 배의 옆구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어린아이들이 돌아가는 프로펠러에 의해 조각이 났다. 바셈이 그녀에게 말했다. “제발 가자. 아니면 너도 프로펠러에 휘말려 죽을 거야.” 헤엄칠 줄 모르는 그녀는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이게 수영이야”라고 생각했다. 기적적으로 발견한 구멍 튜브 속으로 들어가 도아는 부지런히 팔다리를 움직였다. 수영을 잘하는 바셈이 그녀의 손을 잡고 바다를 가르며 헤엄쳤다. 주변에는 시체들이 떠 있었다. 대략 100여 명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구조되길 기도하면서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자 일부 생존자들은 희망을 잃었다. 도아와 바셈은 멀리 있던 한 남자가 구명조끼를 벗고 물에 가라앉는 모습을 목격했다. 또 다른 남자가 다가와 9개월 된 말렉을 둘에게 맡긴 뒤 물 속으로 사라졌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 기운도 용기도 바닥났다.”

이제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질문을 하겠다. 도아와 같은 난민들은 왜 이런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까?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유랑하고 있다. 그들은 4년 이상 계속되는 내전을 피해 조국을 떠났다. 그들은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그들의 집과 사업장, 도시와 마을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래서 시리아 난민들은 인근 국가로 피신했고, 유엔 기구들이 사막에 난민 캠프를 지었으며 도시마다 마을마다 수많은 난민들이 캠프에서 살게 되었다. 인근 국가들은 처음에 마음의 문을 열고 환영했다. 그러나 학교, 수도 시설, 정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시리아 내전은 400만여 명을 국경 밖으로 내몰았다. 7백만여 명의 사람들은 국내에서 폭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이는 시리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국내외 난민이 되었다는 뜻이다.

도아와 바셈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둘째날 바셈은 매우 기진했다. “이런 곤경에 빠뜨려서 미안해, 사랑해” 라고 말한 바셈이 눈앞에서 익사하는 모습을 도아는 보아야 했다. 그날 한 여인이 18개월 된 딸 마사를 도아에게 맡겼다. “제발 아이를 데려가 줘. 나는 살지 못할 거야.” 아기의 어머니 역시 익사했다.

19살의 난민, 물을 무서워하고 수영도 할 줄 몰랐던 도아는 이제 두 아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목마르고 배고프고 겁에 질려 있었지만, 도아는 노래를 부르고 쿠란 구절을 외우면서 아기들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주위에는 시신들이 둥둥 떠 있었다. 그날 밤 달은 차갑고 안개가 끼어서 아주 무서웠다.

나흘째 되는 날, 한 여인이 도아에게 다가와 네 살짜리 남자아이를 맡아달라고 했다. 도아가 아기를 붙잡자 엄마는 물에 잠겼다.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물과 음식을 찾으러 갔다”고 말했지만, 그 아이의 심장이 곧 멎었다. 도아는 아기를 물 위에 놓아 주었다.

그날 오후 해질 무렵 도아는 상선을 보았다. 손을 흔들었다. 두 시간은 족히 소리친 것 같았다. 날은 저물고 마침내 서치라이트가 그녀를 발견했고 로프를 던졌다. 선원들은 한 여자가 두 아기를 붙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스의 헬리콥터가 그들을 크레테 섬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여자아기 말렉은 구조된 배 위에서 죽었다. 도아는 구조선에 끌어올려질 때 아기가 웃었다고 확신했다.

500명 중 오직 11명만이 살아남았다. 이 일에 대해 국제적인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몇 언론만이 대형 참사를 딱 하루 보도했을 뿐이다.

한편 크레테의 소아과 병동에서 마사는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탈수 증세가 심했고, 신장이 손상되었고, 혈당치도 매우 낮았다. 의사는 최선을 다했고 그리스의 간호사들은 아기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만지고 안아 주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놀랍게도 마사는 살아났다.

당시 도아는 크레테의 다른 병원에서 탈수 증세로 입원해 있었다. 퇴원 후 한 이집트 가족이 그녀를 데려갔다. 도아의 생존 소식이 알려지고 페이스북에 전화번호가 뜨자 메시지들이 쇄도했다. “도아, 내 형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 내 자매는? 내 부모는? 내 친구는? 그들이 살아 있는지 알고 있니?”

그 중에 이런 메시지가 떴다. “당신이 내 조카 마사를 구했다고 믿는다.” 아기 마사의 삼촌이었다. 그는 가족과 마사의 언니와 함께 스웨덴으로 갔다. 마사는 곧 스웨덴에서 삼촌을 만날 것이고 그때까지는 아테네의 고아원에서 보호를 받을 것이다.

도아도 잘 있다. 언론은 그녀가 바다 위에서 아기들을 데리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없다고 기록했다. 그리스의 아테네 아카데미는 도아에게 용기 상을 수여했다. 그녀는 부모와 동생을 이집트에서 데려오고 싶어 한다. 도아는 그 일도 해낼 것이다. 그녀는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녀는 특별한 생존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도아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왜 그런 위험을 무릅쓴 걸까? 그녀가 유럽에서 공부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사는 왜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었을까? 바셈은 왜 직업을 찾을 수 없었을까? 이 시대 최악의 내전 희생자들인 시리아 난민을 위한 대규모 재정착 프로그램은 왜 없는 걸까? 그 많은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인근국가에선 왜 그들에게 투자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굶주리게 하고 결국 유럽 해변으로 몰아낸 내전은 왜 종식되지 않는 걸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 바다를 건너 피난처를 찾으려 할 것이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많은 부분 유럽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회에 만연된 두려움을 이해한다. 사람들은 안보와 경제와 문화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람 목숨 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전쟁과 박해를 피해 달아난 사람 그 누구도 안전을 찾아 바다를 건너다가 죽어선 안 될 것이다. 분명한 건 그 누구도 위험한 배를 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식량과 자녀 양육을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잔인한 밀항알선업자의 수중에 목숨을 맡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사와 도아를 대신해, 바셈과 500명 가까운 희생자들을 대신해 그들이 헛되이 죽지 않았다는 확신을 우리가 줄 수 있는가?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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