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숲 향이 달랐습니다. 오랜 가뭄에 수분과 함께 사라졌던 숲의 몸 냄새가 다시 돌아온 겁니다. 바람 불 때마다 얼굴과 머리로 떨어지는 물방울도 상큼했습니다. 서로 엉겨 붙어 몸집을 불리던 빗물이 소소한 바람을 못 이겨 낙하하는 모습이 제법 시원했습니다.

영혼을 혼미케 하는 숲의 포옹에 묻혀 무념무상을 즐기며 걸음을 옮겨 놓았습니다. 살다 보면 영혼이 낳은 생각들이 도리어 영혼을 가두어 버리는 순간을 종종 경험합니다. 이때 포로된 영혼을 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무념무상입니다. 잠시 생각들을 옆으로 치우는 것이지요. 오랜만에 내린 비가 자아낸 숲의 흥겨움에 내 영혼은 아주 유쾌했습니다.

오감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감정에 충실하며 걷다가 저만치서 다가오는 초로의 여성을 보았습니다. 차림새와 행동이 남달랐습니다. 양손에 플라스틱 투명 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플라스틱 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산책길 바닥에서 무엇을 찾는지 연신 두리번거렸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한국분이었습니다. 인사하고 지나치면서 플라스틱 백 속을 슬쩍 들여다 보았습니다. 혹시 숲에서 캐낸 나물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의심이 담긴 눈길로... 백 안에는 산책길을 더럽힌 쓰레기들이 가득했습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무념무상은 깨지고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숲길을 기쁨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대해 왔구나.’하는 생각과 ‘저분은 이 숲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어.”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누가 버린 거야”하고 불평할 줄만 알았지, 아무 행동 없이 쓰레기를 그냥 지나쳤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

야고보서에 기록된 말씀들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네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고백한 수많은 성도들이 믿음의 고백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를 향한 교회의 영적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부쩍 교회 바깥의 사람들로부터 우려와 염려가 섞인 비판을 자주 듣게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산책로 초입에 있는 주차장에서 다시 그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시네요. 감사합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머리 숙여 경의를 표했습니다.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줍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많은 뜻이 담긴 단 한 마디. 이 말과 함께한 그분의 쑥스러워하는 표정에는 겸손이 배어 있었습니다.

내 안을 채우고 있던 숲의 향기를 사람의 향기(人香)가 가만히 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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