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의 선교 사역을 마감함에 즈음하여 내 삶을 뒤돌아 보면서 이 글을 씁니다. 사실 이 글은 나의 간증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간증을 한다면서 자신의 치부는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다 아시고 보시고 계셔서 무엇 하나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여과 없이 다 털어 놓을까 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는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보듯이, 인간의 길흉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소원을 두시고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고 계시는데도, 무엇이든 자기 멋대로 생각하면서 잘된 것은 내가 한 것이고 잘못된 것은 남의 탓, 심지어 조상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소명은 하늘의 명령이고 주님이 특별한 목적으로 각 사람을 불러 사용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도구로 쓰시겠다는 것 외에 다른 뜻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역에 동참시키기 위해 먼저 하나님 말씀을 배우도록 하고, 나가서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권능을 받게 하기 위해 반드시 영성 훈련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훈련이야말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훈련이었다는 것을 내가 겪은 체험을 통해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20년 전, 내 나이 육십이 될 무렵이었습니다. 평생 소원이었던 해외 선교 사역을 언제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습니다. 이왕 생각난 김에 더 늙기 전에 모든 미련을 떨치고 바로 떠나자고 준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고 남의 도움 없이는 거동조차 못하는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밤이면 팔다리가 너무 쑤시고 저려서 허구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면서도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어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선 무슨 말로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후 나의 삶 자체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생각과 행동이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주의 율례와 법도를 배우게 되었다는 시편 기자의 말씀이 임하였고,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자, 이 고난은 하나님이 아무도 모르게 내게만 주신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떡을 먹어 보지 못한 자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알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 이 은혜는 하나님이 내게만 은밀하게 주신 축복임을 깨달았기에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굳게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리고, 매사에 부정적이던 생각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니까, 생각하고 보는 것마다 모두 좋게 보였습니다. 지난날 내 생각대로 안 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미움에 사무쳐 잠 못 이룬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 생각대로 안 될 때마다 남의 탓 하던 태도를 뉘우치니, 굳게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리고 내게 닥친 이 모든 고난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겨지고 감사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마음 상하게 하고 공연히 미워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용서를 해달라고 빈 사람은 난데, 오히려 상대방이 잘못한 사람은 자신인데 왜 그러시냐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하나 되게 하시고 화해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앞으로는 남을 미워하거나 마음 상하게 하는 언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흔히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된다”고들 하지만, 스스로 했던 말이 큰 교훈이 되어 그렇게도 말 많고 내 생각만 고집해서 교회 회의 때마다 분위기를 깨던 내가 지난 20년 동안 내 의견이나 생각을 고집한 적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새벽을 깨우는 일에만 전념하여 일당백의 기도꾼이 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문제로 선교 사역의 꿈을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한 채 접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시는 뜻이 무언지 알고 싶어서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 믿고 너와 네 가족이 구원 받으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면서 제가 돌아다녔는지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저는 원래 무식하고 단순해서 무식한 말로 ‘밑져 봐야 본전’이니 보험을 드는 셈치고 한 번 믿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니면서 씨를 뿌렸으니 그들이 믿고 아니 믿고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직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저를 불러 사용해 주실 것만 믿고 미친 사람처럼 복음을 전한 결과가 이것입니까?” 하고 따졌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도 내게 이럴 수는 없다고,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5년! “당신은 저를 걷지 못하는 반신불수로 만들었지만 저는 절대로 이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5년 안에 10마일을 2시간 이내에 주파하고 말 테니, 그렇게 되면 저를 인정하고 제가 하고픈 선교 사역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셔야 합니다” 하고 기도한 결과, 드디어 10마일을 1시간 50분에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구 소련)로 가겠다고 하니까, 아내와 자녀들이 걱정했습니다. 여전히 중풍으로 고생하면서 진통제와 수면제를 입에 달고 사는 형편인데 그것도 칠십 노구를 이끌고, 러시아에 선교를 간다고 하니,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이처럼 고집을 부렸던 것은 하나님이 진작부터 나에게 주신 소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결국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자. 가족이 총 출동하여 “우리 아빠를 제발 아무 데도 못 가게 말려 달라”고 목사님에게 부탁하지를 않나,“왜 하필 러시아냐? 가까운 이웃 나라 멕시코나 과테말라에서도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러시아에만 간다고 하느냐?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 왜 이리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때마다 오기가 생기고 힘이 나고 큰 격려가 되었으니, 누가 나의 길을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오직 나의 길을 막을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확신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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