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의 유인하는 힘은 너무 강력해서 저항불능입니다.

새벽 예배를 마친 후 만날 분들을 만나 커피 한 잔 나누고, 뒤이어 병원을 찾아 성도님의 쾌차를 위해 기도한 후 차에 오르니 시간이 오전 10시를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시카고 전체를 감싸고 있는 파란 하늘을 취해서 바라보다가 아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우리 잠시 숲에 들렀다 갈까? 갑자기 가을 숲이 궁금하네.” 아내가 머리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자마자 숲쪽으로 내달렸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일주일 동안 찾지 못한 숲엔 가을이 한창이었습니다. 산책로는 낙하한 가랑잎들에 이미 반쯤은 점령당했고, 바람 불 때마다 후두둑 떨어지는 낙엽의 기세로 보아 나머지 반도 백기 들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다보면 풍속(風速)에 따라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를 반복하며 연주하던 숲의 대합창제도 올 시즌 공연을 마감하게 될 거고, 다음 시즌까지 자리를 비운 단원들의 자리는 머지않아 흰눈으로 채워지겠지요. 따스한 가을 햇살 속에서 시나브로 진행되는 숲의 변화는 여유롭기만 합니다. 졸다가 떨어졌는지 놀란 듯 달려가는 털복숭이 애벌레의 서두르는 모습이 어색해보일 정도로.

변화라는 단어가 우체국과 관련한 칼럼 하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칼럼에 따르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미우정국이 2015년까지 22만 명의 직원을 감축하고 수천 개의 우체국을 폐쇄해야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이 편지를 쓰는 대신 이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해서 안부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편지를 써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필기도구를 꾹꾹 눌러 정성들여 쓴 사연들, 그 사연에 딸려들어간 손때, 눈물자국, 한숨, 웃음 소리 등 사람내음까지 담은 편지를 전해주던 우편배달부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디지털화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풍경 하나가 사라져가는 모습이 못네 아쉽기만 합니다.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은 신앙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영적 생활에 투자되어야 할 시간이 잠식당하고 있는 겁니다.

현대 사회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터넷에 푹 빠져있는 사회라고 표현하면 과장일까요? 어떤 정보든 쉽사리 얻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24/7 열려있으며, 게다가 사용료도 비교적 저렴하니 너나 할 것 없이 인터넷에 중독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인터넷 game이나 소셜 네트워크에 푹 빠져있는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은 이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인들 세계에도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인터넷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생활상이 점차 보편화되어갑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앞에서 보내는 시간 때문에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와 교제할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인터넷이 지니고 있는 순기능까지도 무시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투자한 한 시간과 인터넷에 투자한 한 시간이 낳는 가치는 비교가 안 됩니다.게다가 우리가 하루 중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엄격히 정해져 있습니다. 시간을 내서 인터넷이라는 괴물에게 넋을 빼앗기지 않는 방법을 자녀들과 함께 앉아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급속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익사하느냐 아니면 지혜롭게 그 파도를 타고 즐기느냐는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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