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나 죽어! 아이구!” 같은 병실 앞자리에 있는 할머니가 갑자기 복통으로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조금만 먹어도 토하고 늘어졌습니다. 증상을 살펴본 의사가 큰 병원으로 정밀 검사를 의뢰했는데, 췌장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상태가 심해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되겠구나! 잘 됐다!’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사람이 아픈데, 더 나빠져서 수술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데 잘 됐다니?’

‘내가 왜 이렇게 고약한 사람이 되었을까?’하는 자괴감이 큰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이해는 갑니다. 그 할머니가 이 방에 온 첫날부터 침대에서 대소변을 보는데 냄새가 너무 심했습니다. 게다가 치매가 있어 수시로 울고, 욕하고, 밥 먹고도 밥 안 준다고 간호사실에 일러 애매하게 간병인이 야단 맞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운 털이 박힌 것입니다.

그러나 이내 가슴이 철렁한 것은 또 다른 모습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 5년을 시립병원에서 지내다 돌아가셨습니다. 파킨슨으로 거동 못하고, 위암에 치매 증상까지 겹쳐, 그곳 간호사들의 손을 많이 빌렸습니다. 아픈 아내를 돌보느라 가보지도 못하고 임종도 못 지킨 불효아들이 되었습니다.

‘만약 저 할머니가 내 어머니였다면?’ 그래도 눈앞에 안 보이기를 빌고 잘 됐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불편한 공간에서 오래 시달리면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그 대상이 남이 아니고 가족이라면? 아마 그러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길이 있다는 걸 이번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이란, 남들과 지내면서 소화하기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 저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하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의 풍랑이 가라앉는 걸 느낍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지간히 미운 마음이 들어도,‘내 가족이라면’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내 가족의 성공을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가족이기주의도 흔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연, 학연도 그 일종이고, 남들에게는 죄에 가까운 불공평한 빽이라는 것도 그런 거지요.

그래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랜 세월 아픈 아내를 돌보다보니 내 가족이라도 귀찮아질 때가 많습니다. 너무 힘들고 지치면 미워지기도 합니다. 그때는 ‘내 몸이라면?’ 하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몸만 챙기고, 나만 아니면 무슨 일도 괜찮은 이기적 태도가 나쁘다 좋다 말하기 이전에 사람들이 피하지 못하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무 힘들고 아픈데 다른 사람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심술도 나고 외로워집니다. 아무도 나를 몰라 준다는 서러움이 복받치기도 합니다. 나만 그럴까요? 똑같은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남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 만해집니다. 이해도 되고 덜 미워집니다.

예수는 “보소서 여기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습니다!”하는 제자들에게 “누가 내 형제고 자매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이들이 곧 내 가족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새로운 하늘나라의 소중한 가족 개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큰 두 번째 계명이니라!”라고 못 박았습니다.

한없이 연약하고 이기적이고 못난 내 성품도 역으로 사용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 편집자 주 : 김재식님은 희귀난치병에 걸린 아내를 8년 6개월째 병원을 전전하면서 돌보고 있다. 직장도 집도 없이 아내의 곁을 지키는 일이 곧 사랑이며, 우리 모두 살아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기적이라는 걸 글로써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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