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라는 단체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깨운다는 목적을 가진 이 단체는 주로 한인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타깃으로 영적 리더십을 키우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매년 전국적인 컨퍼런스를 열어서 수천 명의 한인 청년들, 청소년들을 훈련시킵니다. 이 운동을 시작한 김춘근 박사는 알라스카 주립대학 경영학 교수이면서 주지사의 경제보좌관으로 일했습니다. 1996년부터 ‘미국을 신앙으로 위대하게 만들라’는 비전을 품고 JAMA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북미주 전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JAMA가 주관하는 리더십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김춘근 박사는 자랑을 하나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모두들 뭐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U Penn 대학원을 얼마 전에 졸업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들 자랑이냐고 농담을 하니까,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파티를 하는 자리였답니다. 학교의 선후배들과 교수님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답니다. 가족을 소개하는 시간에 김춘근 박사의 아들인 Paul Kim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지금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한 사람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He is a Man of Integrity!” a man of integrity란 쉽게 설명하자면 자신이 믿고 기도하고 말하고 가르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때로는 엄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자신을 키운 아버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며 성장했던 아들의 평가였습니다. 김춘근 박사는 아들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이룬 많은 업적보다도, 수많은 상과 칭찬보다도 그 한 마디, “우리 아버지는 믿음과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가 믿는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삽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합니다.”라는 말이 자신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기도를 드렸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직 이방인이었습니다. 제대로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복음 듣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군인이었지만 유대 백성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고넬료입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2). 그리고 10:3에서 하나님은 고넬료를 환상 중에 부르십니다. 10:4를 봅시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 0:4).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기도와 구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기도와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닿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십자가의 복음을 듣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식민지 유대땅을 정복한 관료로 왔다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잘 믿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이 아는 한 최대한의 노력으로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씁니다. 잘은 못하지만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의 기도와 삶을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의 문을 계속 두드렸고 하나님은 그를 찾아와 만나 주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의 기도와 삶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에게 구원의 복음을 가르치신 사건입니다.

성도의 기도와 삶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만일 동전의 앞면에 100원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뒷면에 quarter라고 새겨져 있으면, 그것은 동전일 수 있을까요? 지폐의 앞면이 100불인데, 뒷면은 1불이면 지폐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수집가의 손에는 들어갈 수 있을지언정 지폐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게 되지요. 성도의 기도와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전의 양면이 서로 일치해야 화폐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처럼 성도의 삶과 기도는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기도한 대로 살아야 하고, 좀 더 신앙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기도는 적어도 우리의 삶이 그 기도를 부정하지 않는, 정직하고 변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겸손을 기도했으면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하고, 화해를 기도했으면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하고, 용서를 기도했으면 용서해야 합니다. 헌신을 기도했으면 헌신해야 합니다. 순종을 기도했으면 순종해야 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했으면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후에 내가 주님 앞에 설 때, 내가 했던 수많은 기도의 말들이 내 삶 속에서 발견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그것으로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그 말들이 내 삶을 떠나 있다면, 그래서 나와 하나님 사이를 방황하고 헤매고 있다면, 내가 드렸던 모든 기도가 성도로서의 나의 삶을 정죄하고 판단하게 되지 않을까요? 내 삶이 내 기도를 부정하고 내 기도가 나를 판단하는, 참으로 슬픈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좋은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한 대로 살아서 우리의 삶에 기도의 흔적이 있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삶으로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더 풍성한 은혜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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