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아직도 짱짱하기만 했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낮 시간도 많이 짧아진 가을. 아직 덜 익은 곡식을 익히기 위한 배려인 듯했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 저녁 준비를 하기엔 좀 이른 시간이어서 바구니를 들고 뒤뜰로 나갔다. 시들어가는 잎사귀 사이에서 빨갛게 익은 체리 토마토를 따기 위해서였다.

뒤뜰의 토마토, 올해도 하마터면 작년처럼 모종을 심지 못할 뻔했다. 잠깐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훌쩍 계절이 갔다. 파종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늦은 봄, 텅 비어 있는 텃밭이 허전하던 차에 동네 그로서리에서 팔리지 않은 토마토 모종을 만나게 되었다. 여섯 포기가 들어가는 판에 남아 있었던 세 포기 모종은 심을 시기가 지나서인지 가는 줄기에 이파리까지 시들시들했다. 게으른 내 모습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반의 반값으로 세일을 하는 것이 내 마음을 더 끌었다.

싸게 사왔고 빈터를 채울 요량이었으니 죽어도 아깝지 않을 듯했다. 그러나 막상 심으려 하니 그동안 귀한 대접 못 받은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정성을 다하였다. 구덩이를 깊이 파고 물을 흠뻑 주고 심어서인지 날이 갈수록 꼿꼿해졌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 내 키를 훌쩍 넘었다. 7월 중순부터 꽃 같고, 앙증맞고, 맛있는 열매가 무진장 맺혀서 이웃들과 나누기까지 했다. 시월이 넘은 지금 이파리는 버석하게 마르고 있건만 생산양은 줄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머리가 갸우뚱해졌다. 도대체 땅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어서, 속으로 뻗은 가느다란 뿌리가 위로 올라온 가냘픈 줄기와 합작하여 저리 곱고 맛있는 열매를 쏙쏙 가지 끝에 맺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을 아담에게 주셨을 때, 수고하지 않아도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로 범죄를 한 아담을 풍성하고 아름다운 에덴에서 쫒아내셨다. 이브에게는 산통의 징계, 아담에게는 엉겅퀴를 내는 땅에서 수고하여야 살 수 있는 벌을 주셨다고 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령을 거스른 인간을 아주 멸하지 않으셨다. 짐승의 가죽을 입혀 보호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땅을 가꾸게 하신 놀라운 사랑! 뒤뜰의 토마토를 통해서도 가없는 하나님의 그 사랑은 터져 나왔다. 명령을 어기고 사고 친 아들에게 살이 터져라 회초리 휘두르던 아버지가 울다 지쳐 잠든 아들의 상처에 가만히 약을 발라 주는 모습은 정녕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베푸신 사랑을 닮은 모습이리라.

에덴을 떠나 고통의 세상으로 가는 당신의 피조물 아담과 하와에게 저주만은 분명 아닌 땅을 주셨다. 엉겅퀴로 살짝 가려 놓으신 기름진 땅속에 땀 흘려 가꾸기만 하면 캐낼 수 있는 많은 열매들을 숨겨두신 것이다. 시와 때를 따라 비와 햇빛을 주시고 헤아릴 수많은 수확을 하게 하셨다.

이삼 일에 한 번씩 작은 바구니를 들고 뒤뜰에 나가면 우리 식구가 이삼일 동안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의 열매를 딴다. 잘 저장하여 두었다가 먹으려 하는데도 또 싱싱하고 맛있는 토마토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이웃들과 나누게 되었다. 내 마음이 착하고 선해서 이웃과 잘 나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다.

넘치게 많은 수확을 주신 뜻은 아끼면 썩어 버릴 테니 나누라는 의미, 바로 그것이다. 가난했지만 나눌 줄 알았던 농부의 마음.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리라. 주신 땅.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복.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 나누며 살아야 할 것이다. 저물어가는 계절의 끝에 서서 땅속에 숨겨 놓으신 복을 뽑아 올리는 토마토를 봤다. 새삼 크신 그분의 사랑을 감탄하고 있었다.

언뜻 스치는 생각 하나! 날마다 나의 삶 곳곳에도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묻어 두셨다는 분명한 사실! 나의 신앙은 늦은 봄까지 팔리지 않은 토마토 모종처럼 뿌리도 줄기도 연약하기만 한가보다. 볼 수 없는 눈을 가진 나 자신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 풍성한 은혜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어느덧 영의 눈을 뜨게 해주시길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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