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집불통이라며 답답해하던 꽃 아저씨가 드디어 멍청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 속에서 부글부글 부아가 치밀었다. 멍청이라고?

꽃 장사를 하는 그는 우리 가게의 손님으로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괴짜 철학자나 도시의 도인 같은 느낌이 들어 재미있기도 했다. 어느 날 꽃 한 다발을 건네며 선물이라 했다. 문득 한 손님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Nothing is free in America.”

장사로 체득한 육감을 발휘해 무언가를 캐내려는 순간,‘그러면 그렇지!’ 그가 그 무엇을 꺼냈다. 요즘 한인들 간에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상품이었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인터넷을 통해 제품을 구매할 수 있고 다단계를 통해 얻는 수당도 짭짤하다고 했다.

평상시에 아들들에게 “되도록이면 인터넷으로 물건 사지 마라, 가격도 저렴하고, 집으로 배달해 주니 당장은 편리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작은 규모의 소매점들이 문을 닫게 되고 수많은 일자리들이 없어질 것이다. 결국 네 밥그릇도 내어 주어야 할지 모른다.”라고 잔소리를 해대던 내게 꽃 아저씨는 명함을 잘못 내민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회원 가입을 권유했다. 회원 가입 요구를 절대로 들어 줄 수는 없는 나는 대신에 그를 통해 제품을 구입했다. 내가 사업 수완이 좋아 보이는지, 그는 제품을 팔기보다 나를 회원으로 가입시켜 자기 밑에 두고 싶어 했다. 꽃 아저씨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지인들도 찾아와 같은 회사의 회원 가입을 권유했지만, 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여느 다단계 회사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 회사 사장은 기독교인이며, 그의 사업 철학을 들으면 마음이 달라질 거라고 설득했다. 한 번만 설명회에 나와 보라고 했지만 그들의 부탁을 들어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날 꽃 아저씨는 엄청 열을 받은 모양이었다. “당신 자신이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그것밖에 모르는 멍청이”라고 빗대어 말한 뒤 홱 나가버렸다. 뒤에서 빨리 가달라고 눈치 주는 남편의 헛기침도 한몫 했지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세였다. 사람들의 부탁이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내가 끝까지 버티는 것을 보고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웬일로 이번에는 잘 버티네.”

나도 이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안다. 인터넷 장사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소매상들을 많이 봐온 터라 인터넷 장사를 나서서 돕고 싶지는 않다.

정보 홍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은 어마어마한 것 같다. 인터넷만 열면 상상을 초월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터넷 세상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꼭 뱁새가 된 기분이다. 황새 쫓다가 가랑이 찢어질까 두려워 금세 멈추고 만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 부조리도 늘어나는 것 같다. 부조리 역시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 속으로 번지는 것 같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양심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옳고 그름을 굳이 따로 배우지 않아도 가정과 이웃 안에서 깨우친 행동 철학들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지식, 그런 마음의 법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공동체적인 삶의 근간이 되었던 도덕들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꽃을 파는 아저씨는 사실 이런 세태를 가슴 아파했다. 장미를 손질하다가 가시에 찔리면 잘못을 용서 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찔린 손가락이 욱신거리면 누구를 용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꽃 손질을 하면서 용서할 일과 용서받을 일을 늘 생각한다던 그는 부글거리던 내 마음이 가라앉은 무렵, 꽃 한 다발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쫑니를 드러낸 환한 웃음과 함께! 화해하자면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으이그, 얄미운 아저씨!’

건네는 꽃다발을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들고 하버드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어느 여학생이 했다는 말을 되뇌어 보았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선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꽃 아저씨의 매력은 선을 알고(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행동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세상 지식이 아무리 충만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잠언 1:7)을 피조 세계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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