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 늙은이가 되어 죽는 날만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생각하니,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4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대책 없는 생활을 하면서 저지른 그 많은 죄를 용서 받고 만회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세상 어디든 가서 헐벗고 굶주린, 불쌍한 영혼 하나라도 주님 앞으로 인도해 구원 받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용서 받지 못할, 주홍 같이 붉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딸들도 그런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자식들에게 해준 것 없고, 고집 부리면서 멋대로 살아왔지만, 달라진 모습으로 긴 세월 구겨진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니 어서 빨리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이것저것 준비해 보니, 선교를 하고 싶은 열정만 있을 뿐,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한 가지 재주는 갖고 있어서 그 재주를 십분 활용해서 사역을 한다는데, 재주도 기술도 없는 내가 도대체 무슨 사역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남을 도울 수 있는 형편도 못 되는데 말입니다.

그때 문득 “Silver Mission” 훈련을 받으면서 배운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내게는 많지 않지만 다달이 정부에서 주는 돈 600불이 있지 않은가.’이 돈만으로도 어느 나라에 가든지 사역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고 웬만한 나라에선 현지인보다 훨씬 더 잘 살면서 얼마든지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실버 선교사에게 주어진 주요 사역은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현지 선교사를 돕는 것이라 했으니, 일단 현지에 가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러시아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갑자기 중풍병에 걸려 걷지도 못하는 병신이 되었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면 누가 들어도 말 같지 않을 것 같아 자세히 짚어볼까 합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내게 닥친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축복이라고 생각하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에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죄인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 험한 십자가에 달려 모진 고난을 받으셨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마음 문을 닫은 채 성경을 읽었고,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가서 믿기 어려운 설교를 몇십 년 반복해서 들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느라 허비한 시간과 돈이 아까워 본전 생각이 나기도 했고, 반면 이대로 아무 소득 없이 물러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상만사가 생각하고 믿기에 달렸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나는 그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믿고 하면 “할 수 있다” 고 하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작조차 해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구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이루어진 실상을 마음의 눈으로 보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면 기도 응답을 받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습니다.“응답 받지 못할 기도를 뭣 하려고 합니까?” 하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응답 받지 못한 기도는 하나도 없다고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네 기도가 아직 부족하니 더 열심히, 쉬지 말고 기도하라”입니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예수는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란 것을 믿기로 작정하고, 나 같은 죄인 하나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그 모진 고난을 받으신 것에 감사하면서 기도한 것이 은혜가 되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십자가 고난에 마음으로라도 동참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고통도 참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처럼 나에게 소원을 두고 나를 도구 삼아 어떻게든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기에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든 넘은 노구인데도 나는 지금도 몇 마일 목표를 정해 놓고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뜁니다. 옛날 같지 않아서 너무 힘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숨차고 심장마비로 쓰러질 것 같아도, 도중에 쉬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기에 무모하고 대책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헬스 클럽에서 뛰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프고 호흡 곤란이 왔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달려가 심전도 검사를 비롯해 각종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담당 의사는 심장의 관상 동맥 네 가닥이 90% 이상 막혀 있다면서 이런 심장을 갖고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수술 준비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날 나는 당장 죽는다 해도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의사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오는 금요일에 교회 목사님을 비롯해 장로님, 집사님들이 함께 러시아 선교를 가는데, 내가 못 가면 그 동안 러시아 선교를 위해 준비한 모든 계획이 무산된다. 가다가 죽는 일이 있어도 가야만 한다”고 사정했습니다. “아내에게 알리지 말고 당신과 나만 아는 것으로 하자”고 부탁했지만, 의사는 양심상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집에 가서 모든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 놓았으며, 둘이 손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죽는 한이 있어도 가서 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하나님, 제발 비행기라도 타게 해주십시오. 선교 사역을 위해 순교한 선교사로 이름을 남기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단기 선교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모두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렇게 아팠던 심장이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순간 하나도 아프지 않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러시아에서 삼 개월 동안의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한 번도 심장이 아팠던 일이 없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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