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 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 소도시의 중고등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사회를 보고 전도사는 설교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순서가 되면 늘 학생들은 “전도사님 말씀을 선포하시겠습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방식의 소개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들어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부장 장로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중고등부 임원들과 짧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저의 요구는 그냥 “전도사님이 말씀을 전하시겠습니다.” 정도로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장로님은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래대로 하는 것이 학생들의 신앙 성장에 좋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결국 젊은 전도사가 원하는 대로 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한일 장신대학원장으로 있는 정장복 교수는 제자들에게 설교를 가르치면서 ‘유통업’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전에 한 번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영어에서 ‘delivery’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몇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편지나 피자를 배달할 때와 아기를 낳을 때입니다. 그리고 설교에서 사용합니다. ‘설교를 하다’는 영어의 표현은 ‘deliver a sermon'입니다. 왜 delivery일까요? 피자를 배달하려면, 피자가 식기 전에 가장 맛있는 상태로 배달해야 합니다. 피자를 시켰는데 짜장면이 오면 안 됩니다. 아기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는 아들이었는데 낳아보니 딸이더라 하는 경우는 없지 않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세상에 건강하게 나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설교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좋은 설교는 단순하게 하나님이 드러나는 설교입니다. 정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유통업의 중요성이 재삼 강조되고 있다. 공장에서 아무리 좋은 물품을 생산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 제품의 가치는 반감되거나 심지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유통의 분야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면, 언제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단지 가격의 문제만은 아니다. 싱싱한 물건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제 때에 제 물건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설교와 신학이라는 주제를 살펴봄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유통구조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현상황에 대한 비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을 눈에 보이도록, 마음에 느껴지도록,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경험되도록 하나님을 전달하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다.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삶 전체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설교하기는 하나님의 현존과 역사를 유통하는 것이다.”

저는 정교수의 설교에 대한 가르침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예배에 있어서 설교의 위치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선언 혹은 선포(proclaim)로서의 설교는 분명 설교의 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고, “듣든지 듣지 않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delivery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설교를 듣는 대상은 이미 복음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미 복음의 선언을 받아들였고, 충분히 듣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 귀와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더 복음적으로 살아야 하고 더 순종해야 하고 더 헌신해야 할 성도들입니다. 선포가 아닌 잘 준비된 말씀으로 설득하고 가르쳐야 하고, 먼저 설교자의 삶을 통해 경험된 은혜가 나눠져야 합니다. 청중들에게만 말씀 앞에 겸손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자로서의 설교자 또한 전하는 말씀 앞에 겸손하고 진실되어야 합니다. 비로소 말씀에 능력이 삶의 변화와 성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혹은 ‘대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권위적이 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며, 설교의 청중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하고, 때로는 학습과 상식이 부족한 설교가 행해지기도 합니다. Delivery 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기도 합니다.

좋은 설교를 통해서 설교자와 청중이 함께 은혜를 누리며 함께 성장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설교자가 먼저 말씀 앞에 겸손하고 청중이 함께 허락하신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