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음직스러운 돼지 불고기와 새파란 상추와 싱싱한 오이가 허기진 배를 유혹한다. 아이들이 다 커서인지 모처럼 같이하는 저녁 식탁이 너무 좁다. 식구들이 식탁의 제자리를 찾아 앉고, 순서에 따라 둘째의 식사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젓가락질이 바쁘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나름 가족 밥상을 신경 쓴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종일토록 가족을 위해 애쓰는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밥이라도 잘해 먹이는 것이었고,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는 밥상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식탁에 함께한 큰애와 둘째 앞으로 맛있는 음식을 밀어 놓자 남편의 시기심이 발동한다. 식탐이 별로 없는 남편이지만, 저녁 식탁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 그의 시기심이 한 몫 한다.
“둘이 먹을 땐 김치밖에 없더니 왜 이렇게 반찬이 많은 거야.”라고 한 마디 한다. 김치만 밥상에 올린 적이 없는데도 그런다.

“아니, 권력이양 된 지가 언제인데 그런 소릴 해. 당연한 걸 가지고.” 농담 삼아 한 마디 한다.
두 녀석은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젓가락질에 바쁘다. 순식간에 수북이 쌓여 있던 음식의 바닥이 보인다. 내가 얼른 고기 한 점을 남편 밥그릇에 올려놓지 않으면 남편은 맛도 못 보게 생겼다.
권력이양!

설거지를 하면서 내가 한 말을 생각해 보니 씁쓸하다. 세상이 다 이 힘(돈의 힘)의 무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데, 우리 집 밥상에서도 이런 일이? 고의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생각해 볼 문제였다. 웃자고 한 이야기였지만 왠지 뒷맛이 영 쓰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가족을 책임지는 일에 대해 남편이 힘들어하거나 불평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정말 가족에게 헌신하는 일이 억울하거나 성가신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가끔 자기만의 시간, 취미 혹은 여유를 갖고 싶었던 적이 없었을까? 왜 나는 남편이 가족을 책임지는 일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일까? 우리 아버지들이 그렇게 살아왔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활동 능력이 떨어지면 가족으로부터 은근히 천대를 받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심은 대로 거둔다는 우주의 법칙 때문인가? 그럴 만하니까 그런 대우를 받는 이들이 있다고는 해도, 아버지들이 항간에 떠도는 유머에 나오는 대우를 받는 게 과연 옳을까? ‘가을비에 젖은 낙엽처럼 부인 곁에 붙어 있다’, ‘이사 목록에서 남편은 제외된다’,‘아내의 필요 목록에 남편은 없다. 남편의 필요 목록에는 오직 부인만 있다’ 등등.

남편 혹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그들은 가족 서열 1순위다. 그런 우스운 유머로 희롱할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젊은 날 불만불평 없이 가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므로 존경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물론 성공한 사회인이면서도 가정에선 실패한 아버지, 실패한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폭력으로 가족을 멍들게 한 아버지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밖에 못 배운 피해자들이다. 그렇게밖에 못 배웠기에 배운 대로 한 것뿐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더욱 절실해지는 것은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의 힘이다. 아이들이 보통 엄마에게만 모든 걸 다 말하고 소통하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이슈나 인정받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아빠를 찾는다. 아이들은 왜 아빠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걸까?

아이들이 크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아빠는 아이들의 삶에서 세상을 향한 통로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삶의 양식을 보면 또 다른 아버지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아버지의 삶을 모방한다.

아! 아버지! 당신이 살아야 가정이 살고 자녀들이 삽니다. 당신은 가정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당신의 정체성입니다. 당신이 벌어다 주는 돈보다, 어쩌면 가족은 당신의 정신, 당신의 사랑을 더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인간 본연의 삶의 틀이 망가져가는 듯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당신 한 사람이 회복되면 가정과 사회와 자연이 회복될 것입니다. 당신은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버지! 당신의 리더십을 보여 주십시오. 그리고 힘을 내십시오. 사랑이라는 권력을 자식에게 이양해 주십시오. 아버지 당신은 약자들 위에 힘으로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으로 다스릴 책임을 하나님으로부터 이양 받은 영원한 사랑의 권력자입니다.(창세기 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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