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학교 교육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어린 시절의 교육과 독서는 인격 및 습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도 14~16세 이전의 신앙 교육이 인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 준다. 조지 워싱턴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지 워싱턴의 교육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어린 시절에 학교 또는 집에서 개인교습을 받았다. 2) 아버지가 죽은 후 공립교육의 기회가 없어졌지만, 조지 워싱턴은 자기 발전을 위한 독학을 선택했다. 독서를 통해 끊임없이 배움의 길을 걸어갔다.
이번 호에는 조지 워싱턴의 어린 시절의 교육을 Peter A. Lillback이 쓴 『Sacred Fire』(Bryn Mawr, PA: Providence Forum Press, 2006)를 참고해 살펴 보고자 한다.

조지 워싱턴의 가족은 1738년, 프레드릭스버거로 이사했고, 조지는 여섯 살때부터 지역 성공회 신부인 제임스 메리에(James Marye)가 운영하는 학교에 등록했다. 제임스 메리에 신부는 성공회 복음주의자였고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조지는 신부에게서 수학, 라틴어, 도덕과 행동 규범을 배웠다. 프레드릭스버거의 학교에 다닐 때, 교사들 중에 교회의 관리사무장(sexton)이었던 매스터 하비(Master Hobby)가 있었다. 워싱턴의 전기작가인 벤슨 라싱(Benson Lossing)은 매스터 하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스터 하비는 키가 작았지만 자존감이 강했고, 그가 말을 하면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 엄청난 양의 지혜가 저렇게 작은 머리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고 한다. 매스터 하비는 조지 워싱턴의 첫 번째 교사였다. 하비는 말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총사령관 워싱턴을 만들었지.”(p. 116)

조지는 아버지가 죽은 뒤에 이복형 어거스틴이 사는 포프 크릭에 가서 살았다. 이때 헨리 윌리엄스(Henry Williams)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조지의 어린 시절 교육의 대부분은 어머니 메리, 개인교사, 그리고 지역 성공회 신부로부터 받은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신앙 교육

조지 워싱턴은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았다. 어머니에게서 성서이야기를 들었고, 글자를 깨우친 뒤에는 스스로 성서를 읽었으며,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했다. 조지 워싱턴의 신앙 교육은 당시 성공회 신앙 전통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지 워싱턴이 가지고 있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조지 워싱턴은, 어거스틴 워싱턴과 그의 아내 메리의 아들로서, 1732년 2월 11일, 오전 10시경에 태어났고, 4월 3일에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브롬리 화이트닝과 대위 크리스토퍼 브룩이 대부(Godfather)였고, 마일드레드 그레고리가 대모(Godmother)였다.”(p. 117)

조지 워싱턴의 아버지는 교회위원회(vestry)의 일원이었고, 어머니 메리 역시 신앙심이 깊고 성직자와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성공회 신부가 조지 워싱턴의 신앙 교육을 담당했다. 성서를 가르치고, 십계명과 주기도문, 사도신경 그리고 성공회 교리문답 등을 가르쳤다.

조지 워싱턴의 서재에는 그가 13살때 받은 성공회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가 있다. 이 기도서는 조지의 어린 시절 교육에서 중요한 교재로 간주된다.(p. 118) 이 공동기도서에는 매일기도로 아침, 저녁, 밤기도가 있고, 주일 성찬예배문이 있다. 또한 신앙생활에 필요한 여러 예배문과 시편, 교리문답 등이 들어 있다. 조지 워싱턴의 공동기도서에 묻어 있는 손때와 눈물자국은 공동기도서가 어린 시절 신앙 교육의 중요한 교재였음을 증명한다. 조지 워싱턴은 날마다 장문의 아침기도, 저녁기도를 손수 작성했다. 그가 작성한 아침기도, 저녁기도는 성공회 공동기도서의 언어 양식 및 문체와 닮아 있어서, 공동기도서가 얼마나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조지 워싱턴의 어린 시절의 신앙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책들이 그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중에 특별히 언급할 책은 『젊은이들의 동반자: The Young Man’s Companion』이다. 17세기에 애플비 학교를 비롯해 영국 학생들이 즐겨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여러 판본이 있는데, 조지는 1742년 제13판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주제들을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 기독교 지식을 전달했다.(p. 126) 예를 들어 글자를 가르칠 때에도 성서적이고 기독교적인 내용들을 포함시켰다. C는 Christianity, F는 Fellowship, I는 Immanuel, P는 Providence 등이었다. 그래서 ABC를 배우고 외울 때 성서적 진리를 배우고 외우게 되었다.(p. 126) 실제적인 삶에 필요한 산수 문제들도 포함돼 있었다.

조지 워싱턴은 16살에 측량기사가 되어 쉐난도 밸리를 측량했다. 조지는 측량 노트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만약 에스겔서에서 측량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여호수아서(이스라엘)에서 찾아보라.”이 노트는 조지 워싱턴이 어린 시절부터 받았던 신앙 교육의 관점에서만 이해된다. 앞으로 조지 워싱턴과 성경의 관계를 자세하게 언급하겠지만, 이 측량 노트의 첫 페이지에 기록된 문장이 그가 받은 신앙 교육을 증명한다. 그는 어린 시절에 성공회 신부로부터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은 국가로서 분명한 지리적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배웠다(여호수아 13-21장). 에스겔서는 새롭게 세워질 성전에 관한 측량, 세워질 도시의 경계선에 관한 자세한 언급으로 끝을 맺는다(40-48장). 쉐난도 계곡에서 새로운 땅을 측량하던 조지는 자신이 여호수아처럼 새 이스라엘의 경계를 짓고, 에스겔처럼 새 예루살렘 도시를 측량한다고 느꼈을 것이다.(p. 108-109)

사교와 대화에서 예의 바르고 품위 있게 행동하는 규칙들

조지 워싱턴의 인격과 행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책은『사교와 대화에서 예의 바르고 품위 있게 행동하는 규칙: Rules of Civility & Decent Behavior in Company and Conversation』이다. 조지는 12살 때 성공회 신부인 제임스 메리에(James Marye)에게서 이 책을 소개받았다. 1595년에 프랑스 예수회 성직자가 프랑스 귀족의 자제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훈육하려는 목적으로 110가지 규칙을 모아 편찬한 책이었다. 1640년에 영어로 번역된 이 책은 예티켓에 관한 간결한 충고와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조지는 이 행동 규범을 노트에 옮겨 적었고, 당시의 학생들처럼 외우고 몸에 익히도록 훈련받았다. 이 책은 조지가 군인, 정치인, 농장주,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지가 벨보아의 저택, 페어팩스 경의 집안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경험한 사교와 품격 있는 행동들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이후 조지는 그것을 몸에 익혀 실천했다.

끝까지 달려 가게 한 신앙 교육

계몽주의 사조와 이신론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조지 워싱턴은 어린 시절에 배운 신앙을 죽을 때까지 지켰다. 놀랍게도 조지 워싱턴이 어린 시절부터 받은 가정적이고 교회적인 신앙을 거부하고 배척했다는 기록은 단 하나도 없다.(p. 133) 따라서 조지 워싱턴이 어린 시절에 받은 신앙 교육은 그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운명을 헤쳐나갈 때 하느님의 섭리를 경험하도록 인도하는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가 조지 워싱턴을 가르쳤든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그의 어린 시절 교육은 성공회 신앙 전통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p. 116) 조지 워싱턴이 인격적으로 진실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독립 전쟁 중에, 제헌의회 때에 그리고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했을 때, 특히 독립전쟁 중의 고난과 위기에서, 권력을 추구했을 때, 신앙은 그를 지켜 주고 인도해 준 바위이자 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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