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3년간 미국에 살면서 뉴욕을 수십 번도 더 가봤지만 주로 차를 타고 지나갔거나 사역을 위해 또는 볼일 보러 잠깐 들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맨해튼의 타임 스퀘어와 911 테러 현장에 가서 걸어봤습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맨해튼 남단을 왕복하는 페리도 타보고, 지하철도 타보고, 그 유명한 Shake Shack Hamburger도 먹어 봤습니다.

지난 연말 한국에서 잠깐 여행 온 대학생들과 함께 미국 동부 관광에 나서서 처음으로 오래 걸어본 맨해튼 거리(그래 봐야 여섯 시간이 고작이었지만)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사람의 홍수 속에서 서너 블록을 걷는 데 30분 이상 걸릴 정도로, 태어나서 그런 인파는 처음 구경했는데 한국의 명동 거리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습니다. 걸은 것이 아니라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면서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뉴욕에 관한 정보들을 미리 얻어서 갔지만 막상 가보니 너무나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수없이 가봤기 때문에 지리는 잘 알았지만 차에서 내려서 발로 걸으며 직접 경험한 뉴욕은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이를 통해 그냥 ‘아는 것’과 ‘경험적으로 아는 것’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이해한다고 해서 성경이 말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중심 단어 중 “믿다”, “알다”, “거하다” 라는 동사들이 다 동의어로 쓰였는데, 이 단어들이 전부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론을 알고 동의하는 것과 경험적으로 알아 동의하는 것은 차원이 아주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적으로 안다는 뜻이고 또 예수님이 사시는 차원에서 그분의 목적과 가치를 똑같이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전부 다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곧 영생(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대화 중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요 17:21-24)

이것입니다. 이 “나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무리, 즉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 “교회” 입니다.

물론 겉에서 보기에 잘 돌아가는 제도나 조직이나 관습이나 의식으로 가득한 기독교가 아니라, 머리이신 예수님이 주도하셔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와 이 땅을 떠나 영원히 이런 교회에서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알고 교제하며 영광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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