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Spirituality 59

오늘은 성령의 열매(갈 5:22-23) 묵상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동안 갈라디아서 5장에 등장하는 성령의 열매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은혜를 누리고자 하는 영적인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이번에 묵상하는 성령의 마지막 열매는 “절제”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절제가 필요한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절제의 열매는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절제는 은혜를 통해서

절제는 훈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작은 것 하나를 바꾸려는 노력과 훈련이 절제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 줍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습관은 습관으로 고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의 습관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습관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절제는 나쁜 습관을 제어하고, 올바른 습관을 실천하는 노력과 훈련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훈련으로 절제를 실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절제의 열매는 우리들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절제의 열매는 은혜를 통해 가능합니다. 어거스틴 또한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합니다. 『고백록』을 보면 어거스틴은 잘못된 습관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회심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문제가 발목을 잡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끊어내고 싶었던 잘못된 습관이 말을 걸어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네 생각에 우리가 없어도 네가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때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고백록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절제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절제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너는 네 발로만 서려고 하느냐? 그래서 너는 설 수 없는 것이다. 주님께 네 자신을 맡겨라. 두려워 말라. 그가 너를 붙들어 넘어지지 않게 하시리라. 두려워말고, 너를 그에게 용감히 맡겨라. 그가 너를 영접하여 온전케 하시리라.” 이것은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절제의 열매를 맺고 회복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영성 지도자인 제랄드 메이(Gerald May)는 중독에 관한 자신의 책 제목을 『중독과 은혜, Addiction and Grace』라고 정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중독의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심을 의지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은혜가 나타났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것을 항상 강조합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승리가 이미 나타났고, 나의 연약함을 치유하는 회복의 은혜가 이미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나를 위한 회복의 은혜는 이미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우리의 고통과 상함을 치유하는 은혜를 십자가에서 이미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가 해답입니다. 우리가 절제라는 은혜를 경험하는 방법은 십자가에 이미 나타난 은혜를 붙드는 것입니다. 절제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할 때에 가능해집니다.

절제는 사랑을 통해서

절제의 열매를 맺는 또 다른 방법은 사랑입니다. 절제는 사랑하면 가능해집니다. 사실 우리가 절제해야 하는 그 어떤 것은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인간이 가진 욕구 중의 하나는 사랑받고 싶고, 또한 사랑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욕구가 어떤 물건이나 행동에 고정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결국 중독이란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완전하게 채워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께 갈 때에 우리는 인생의 완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랑을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하고, 거기에 집착할 때 중독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주고 받아야 할 사랑이 어떠한 대상과 행동에 왜곡되어 나타날 때 또한 중독의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중독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해치게 됩니다. 중독의 문제로 신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구석을 숨기기 위해서 사람들로부터 고립됩니다. 자신 안에 어두운 비밀이 있으니, 그 어두운 곳으로 자꾸 혼자 들어가려고 하지,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고립은 점점 깊어지게 되고, 결국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해치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왜곡된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진짜 사랑을 향해 나아가고, 물건과 왜곡된 행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사람들과의 진짜 사랑으로 나아갈 때에 중독을 끊어내고 절제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사실 사랑이 모든 것의 해답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사랑이 결국 남은 여덟 가지 성령의 열매를 모두 맺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동안 묵상했던 성령의 열매는 모두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속성에 등장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않고,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견디느니라.” 이 모든 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면서, 동시에 다른 열매들을 맺도록 만들어 주는 방법입니다. 절제의 열매 또한 사랑할 때 이루어집니다. 절제가 필요할 때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들면 내가 삼가해야 할 절제가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절제를 통해 자유로

이러한 절제의 열매를 이룰 때 누리게 되는 축복은 바로 자유입니다. 무언가를 참고 삼가는 것은 힘들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절제를 우리를 속박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제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필립 시먼스(Philip Simmons)는 『낙법 배우기, Learning to Fall』라는 책을 통해 삶에서 넘어지고 실패하는 경험을 통해 중요한 것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삶에서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평상시에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손아귀에서 놓아 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취, 계획,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모두 버릴 때, 비로소 찾게 되는 것이 가장 귀중한 것, 바로 자유입니다. 삶을 놓아 버려야 우리는 가장 완전한 형태로 삶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이분은 삶의 고통 속에서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버리고 자유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절제라는 말의 또 다른 이름은 내려놓음입니다. 나의 잘못된 습관을 내려놓고, 나의 은밀하고 어두운 구석도 모두 포기하고, 내가 나를 통제하려는 마음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십자가의 은혜에 내어맡기면서 나아갈 때에 우리의 삶에는 자유가 펼쳐집니다. 나의 어두운 구석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던 사람은 절제의 열매를 맺을 때에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빛으로 걸어나옵니다. 그때 그 사람은 빛 속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편안히 마주보게 될 것입니다. 밝은 빛 속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어떠한 어두운 구석도, 어떠한 감정적인 뒤틀림도, 어떠한 욕심과 욕망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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