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에 메시지가 들어왔다는 신호가 보였다. 두 돌을 막 넘긴 손자와 사랑에 푹 빠진 언니가 아이 노는 모습을 보내온 것이었다.

자기가 보기엔 한 순간 한순간 기특하고 신기한 행동을 하는 손자인지라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자랑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까딱하다간 푼수가 될까 삼간다고도 했다. 대신 아직 손주가 없는 나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찍어서 보내 준다. 나도 어느덧 정이 들었는지 녀석의 귀여운 짓을 보는 것이 기쁨이 되어 버렸다. 하루라도 소식이 없으면 안달이 날 지경이다.

전화기 속에는 연회색의 티셔츠에 검정 조끼와 검정 바지를 입은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내 엄지손가락보다 작을 듯한 왕자님이 긴 겨울 동안의 집안의 삶을 마감하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창문으로만 내다보던 파란 잔디의 봄동산을 처음으로 발로 디뎌보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느껴지는 잔디의 감촉이 놀랍기만 한가보다. 자신의 뛰고 있는 발걸음을 관찰하느라  굽힌 허리를 펴지 못했다. 잠시 후 더 신기한 것들을 놓칠세라 바쁜 눈 놀림과 몸짓이 온몸으로 봄동산의 신비를 표현하고 있었다. 넘어질 듯 엎어질 듯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뒤뚱 뒤뚱 뒤뚱. 다시 찾기 어려운 귀한 것을 찾았나 보다. 구부린 자세로 한동안 잔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또 뛰기 시작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하더니 결국에는 꽈당! 한 무릎을 꿇으며 넘어져 버렸다.

어그적 어그적 궁둥이를 위로 쳐들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오른쪽 무릎이 잔디에 부딪쳤나보다. 놀란 할머니가 뛰어가는 듯 화면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울지도 않고 일어나는 엄지 왕자님은 자세를 곧 추스렸다. “조심해!” 할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반듯하게 일어난 아이는 손뼉을 치며 손에 묻은 물질을 털어냈다. 침착하게 두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두들겨 봤다.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이 의젓하기까지 했다. 다친 곳의 조사를 다 끝낸 아이는 빙그레 얼굴 가득 미소와 함께 서툴지만 분명하게 카메라를 향하여, 아니 제 거동을 보고 놀라고 있는 나를 향하여 말을 하고 있었다. “I a~a~m OK!"

또 한 해를 뒤로 하고 새해를 살고 있다. 지난 일 년의 긴 여정 속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날개 달린 나비처럼 가뿐했던 행복한 일들도 분명 있었다. 검회색의 바위처럼 암담했던 일들 또한 맞고 보냈다. 크고 작은 많은 일들. 기쁨과 감사로 흥분했던 일도 많았건만 마음 안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일들은 어렵고 황당했던 일들이 대부분이다.

누구한테나 올 수 있는 어려운 일들이 정작 내 앞에 오면 잔디밭을 어설픈 동작으로 밟아 보는 아이가 되고 만다. 이만큼 살았으면 충분한 경험으로 이골이 났을 일도 해결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낯설다고 엄살을 부리며 뒤뚱거린 적은 얼마나 많았던가! 늘 크고 작은 사건 속을 관통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순조롭지 못한 일 앞에선 절망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과 잣대를 들이댄다. 지혜로운 방법과 생각들을 인정하지 않고 괴로워한다.

내 방법보다 나은 법을 인정하기까지 겪었던 갈등도 조마조마한 걸음걸이 같았다. 지나고 보니 같은 일의 반복이다.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을 겪어야만 초연해질 수 있을까. 이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고 빙그레 미소를 지은 얼굴로 "나 괜찮아요.!"  할 때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린다. 다행히 이번 우기에는 몇 년 동안의 가뭄을 해갈시킬 수 있을 만큼 흡족한 비가 왔다. 시에라 산맥 위의 눈들도 여름 동안 광활한 농장의 작물에게 줄 충분한 양의 눈을 안고 있다는 뉴스를 대한다. 여기 북쪽 캘리포니아가 가물다는 내 비명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들어 주었던 많은 분들에게 "이젠 괜찮습니다." 외치고 싶다.

봄이 오면 여기저기서 가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많은 풀들이 스프링처럼 싹을 튀어내며 "I am OK! I am OK!" 나를 향해서 인사를 보내 올 것이다. 불쑥 올라오는 연한 새싹의 인사도 내 이웃과 나누고 싶다, 고사리 손과 예쁘게 피어난 미소를 "괜찮아요!"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어졌다.

바라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도 이 봄에는 밝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난 괜찮아요. 난 괜찮아요!" 외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픈 곳을 두들겨가며 긴 괴로움 속에서 아픔을 통하여 더 단단해졌다고 자랑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 뜻으로 전화기 화면 속 엄지왕자의 빙그레 미소와 봄의 온기가 뽑아낸 연한 새싹의 인사를 전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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