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달러 98센트입니다.”


빌(Bill)은 22달러와 함께 인보이스를 내밀었다. 옷을 내주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빌은 머뭇거리며 가게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빌은 10년 넘게 찾아오는 단골손님인지라, 웬만한 집안 사정이며, 대인관계 공포증으로 쉽게 타인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그의 성격까지 잘 알고 지내온 터라 그의 머뭇거림이 낯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이나 더 주고받았는데도 그는 여전히 서성거리며 가지 않았다. ‘빨리 좀 가지’하고 내 속에서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월요일 아침은 다른 날보다 일이 더 많아서, 내 머릿속은 다음 할 일로 가득 차 바쁘기만 한데, 그날따라 빌은 계속 시간을 끌면서 가지 않았다. 가달라는 뜻으로 “Have a nice day!”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빌이 거스름돈 2센트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순간 얼마나 당황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2센트를 거슬러 주면서 “잊어버려서 미안하다”고 얼버무렸다. 사실 2센트를 거슬러 주어야 한다는 걸 잊은 게 아니었다. 보통 손님들이 몇 센트 정도는 받아가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거였다.

페니까지 받아가는 손님이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날 빌의 태도는 평상시와는 달랐다. 2센트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나가는 빌의 뒤통수에 대고 ‘덩치값도 못한다. 쪼잔하게 2센트까지 받아 간다.’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영혼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그 2센트 때문에 속이 편치 않았다. 당연히 거슬러 주어야 하는 2센트를 안 준 것도 모자라 속으로 비아냥거리기까지 하다니? 2센트 때문에 씨름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식구들이 잠 든 고요한 밤에도 2센트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15년 가까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신용과 서비스의 품질 면에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이 2센트가 신용에 흠집을 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물론 빌은 그 동안 쌓아온 신뢰 때문에라도 나를 이해해 줄 것이다. 손님 옷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면 인보이스와 함께 보관했다가 돌려 주고, 새 지폐의 빳빳함 때문에 한 장 더 받게 되는 경우에도 쫓아나가 돌려 주던 내 모습을 여러 번 보았던 빌이 2센트 때문에 나를 불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신뢰가 깨진 기분이었다. 빌은 성경을 가르칠 정도로 성경에 박식하고, 작은 일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며, 누구와 대화하든 진지하게 들어주고 대답하는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가끔 서툰 영어로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빌에게서 배우는 게 참 많다.


얼마 전에도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을 듣고 감탄했다. 찻집에서 빌은 동양인 부부가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넣은 뒤 테이블에 떨어진 설탕 부스러기와 다른 사람이 흘리고 간 프림 얼룩까지 깨끗하게 치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 순간 빌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고 했다. 저렇게 작은 일에 신실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큰 일도 맡기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깨달은 바를 나누었다. 빌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일도 일일이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곤 했다.


어쩌면 빌은 2센트를 돌려 받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만난 동양인 부부의 행동을 계속 묵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빌은 성경에 관한 대화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 성경 말씀을 실천하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몹시도 빌이 기다려졌다.


이틀 후 빌은 여느 때처럼 세탁물을 들고 웃으면서 가게 안으로들어왔다. 그는 1달러 지폐와 2센트를 꺼내 불우이웃돕기 모금통에 넣으면서 씩 웃었다. 나도 얼른 4센트와 2달러를 꺼내 모금통에 넣으면서 웃었다.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작은 일에 충성하고 한 호리라도 갚지 않으면 나 자신의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빌은 오른손을 치켜들고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나도 웃으며 하이파이브에 화답했다. 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진심 어린 충고 한 마디를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페니 하나라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은 쪼잔한 행동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지요. 아니, 크리스천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빌이 무언으로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