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ng and winding road

1. 얼마 전에 생일을 맞았다. 오십 중반을 넘어섰다. 생일유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함께 나눠 보고자 한다. 개인적인 것이 동시에 보편적인 것임을 믿으면서...

2. “그대 집 앞으로 나를 이끄는 / 길고 구불구불한 길 /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길 / 전에 보았던 그 길이 / 언제나 나를 여기 / 그대 집 앞으로 이끌어 오네”비틀즈의 노래 ‘길고 구불구불한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나 또한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왔다.


3. 자연의 품 안에서 태어나: 나는 단군 할아버지께서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 강화도 마니산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와 바닷가에 닿은 긴 곳(長花理: 긴 곳을 음차하여 표기한 한자어 동네 이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이면 갯벌이 길게 늘어선 바닷가가 나온다. 여름이면 바닷가에 나가서 멱을 감고, 망둥이를 잡았다. 뒷산에 올라 동네 형들과 함께 소를 먹이고, 싱아와 찔레를 꺾고, 머루와 산딸기와 밤을 따먹었다. 논둑길에서 개구리를 잡고, 때론 뱀도 잡고, 땅을 파서 칡을 캐기도 했다. 겨울이면 아버지와 함께 장화를 신고 논 웅덩이에서 바가지와 다라(그 당시 그렇게 불렀다)로 물을 퍼내고,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기도 했다. 부드럽게 두 개의 큰 반원을 그리며 바닷가가 펼쳐져 있고 산이 마을을 감싸 안은 동네, 긴 곳은 분명 편안한 나의 자궁이었으리라.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이민 목회를 시작했을 때, 쉬는 날이면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시내 구경을 하고 싶어 했다. 전통 시장도 둘러보고, 시내 청사에서 열리는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싶어 했다. 나는 호숫가나 숲, 공원에서 자전거도 타고, 새소리도 들으며 아이들과 마음껏 뛰어 놀고 싶었다. 미국의 시카고 근교로 이사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시내 구경을 원했고, 나는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미국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휴가지로 선택한 곳은 늘 자연이 보존되어 있는 국립공원이었다. 그곳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다. 충주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아내도, 강화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나도 어린 시절, 그 성장의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 것인지 모른다.

4. 심전경작(心田耕作)하는 농부로서: 아버지는 농부이셨다. 땅을 갈아 작물을 심고, 땀 흘리며 가꾸어서 열매를 거둔 땅의 사람이셨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자연의 섭리를 따른 촌농(村農)이셨다. 주씨 집성촌에서 이웃들과 함께 농사 짓고, 담장 너머로 음식을 나누며, 마을에 있는 성공회를 중심으로 공동체의 삶을 일구어 오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나도 농부이다. 아니 농부가 되고 싶다. 지난 몇 년 간 텃밭을 가꾸면서 나 자신이 심전경작(心田耕作)하는 농부여야 한다는 사실을 되뇌고 있다. 무의식과 본능을 따르고픈 욕망을 끊임없이 갈아 엎고(cultivate), 생각(mind)과 마음(heart)과 영(spirit)을 의식화하여(make aware),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변화하는 삶을 살면서 거룩한 산 제물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농부, 더불어 살도록 하는 축제의 제사장으로서의 농부여야 한다. 며칠 전 텃밭에 나가 삽질을 하였다. 얼어붙었던 땅 밑이 녹으면서 봄이 오는 길목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에는 텃밭에 무엇을 심을까? 올해에는 함께 심고, 가꾸고, 수확물을 나눠 먹자고 했더니, 함께하겠다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수확할 때에만 함께하고 싶다”고 농담을 던지는 친구도 있지만, 밭을 가꾸고, 심전경작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를 질퍽한 뒤뜰을 걸으며 기도해 본다.

5. 유목민처럼 삶의 자리를 옮기며: 학교를 졸업한 뒤 삶의 자리를 여러 번 옮겨 다녔다. 인천 부평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모와 정든 집을 떠나 낯선 땅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 이후 3~4년 주기로 삶의 자리를 옮겼다. 1997년 가을, 시카고의 성공회 한마음교회의 초빙을 받아 미국 시카고 근교에서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살고 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 구불구불 돌아온 인생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옮기면서 살았다. 내가 계획하고 선택한 삶이기보다는 삶의 정황에 의해 돌아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 유학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대한성공회 100주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덕수궁 돌담길 옆에 있는 서울대성당으로 발령을 받았다. 신학교 동기들은 내가 서울대성당으로 유학을 갔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다가 토론토의 캐나다로 파송을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즈음에 지금의 한마음교회에서 청빙이 왔다. 미국 시카고에 와서도 처음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사목하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곳, 시카고 근교에서 살고 있다. 그 길은 길고 구불구불한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6. 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서: 왜 구불구불 돌아서 여기까지 왔을까? 시편 95편에서 노래하듯이‘마음이 헷갈려서’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한 가지 가늠할 수 있는 성찰은, 일찍 집을 떠났기에 떠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하나님의 신비이고 경이(驚異)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돌고 돌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요나도 돌아서 니느웨로 들어갔다. 동방박사들도 돌아서 다른 길로 갔다. 사도 바울 역시 돌아서 다른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돌아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나도 돌고 도는 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괴로워하며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렸다. 돌고 도는 길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아파하고 때론 절망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상처입고, 연약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났다.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가 사람이 되어 갔다. 감사하게도 돌고 도는 길에서 함께 길을 걷는 친구들, 신앙의 선배와 후배들을 만났다. 함께 길을 걸으며 길섶에 있는 들꽃을 보고, 함께 웃고, 함께 밥 먹고, 함께 놀았다.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서 시작하여, 인천, 무악재 연희동산, 항동골, 서울 덕수궁 옆 정동을 돌아 왔다. 태평양을 건너, 토론토로, 또 국경을 넘어 미국 시카고 근교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왔다. 그 돌고 도는 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누리며, 삶의 신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제 돌고 도는 길의 한자락에 서서, 또 돌고 돌아서 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그 길섶에는 어떤 신비가 있을까? 교회의 한 형제가 생일 축하 카드에 이렇게 썼다. “저와 신부님의 30년 후를 지금 이 순간 함께 그려보니 참 좋습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소서.” 그렇다. 지금 이 순간, 50 중반에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신비이며 경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제 30년 후의 신비와 경이를 바라보며 은총에 은총을 더할 그날들을 바라보며, 또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면서, 먼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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