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6)

3장에서 살펴 본 대로 아하스왕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쳤으며 자유를 포기하였다. 비록 히스기야가 자유의 회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종교적 개혁을 행하였으므로 완전한 파멸은 모면하였지만, 뒤를 이은 므낫세 왕은 유례없이 우상을 숭배하고 이는 정치적 굴복에 의한 종주국의 신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의 신들에게 예루살렘의 신적 지배권을 내주게 된 것이다.

1) 그러나 앗수르 제국은 분열로 그 힘을 잃었으며, 애굽의 26왕조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앗수르의 내부에는 서부 이란 고지의 메데와 나보폴라살(B.C. 602-605년)의 바벨론이 독립을 쟁취하였다. 612년에 메데와 바벨론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하였다(나훔, 3:1, 4, 7, 19)

2) 이러한 국제 정세로 인하여, 유다는 자연스럽게 자유를 회복하게 되고 마침 요시아 왕의 개혁으로 모든 이교를 소탕하게 된다(왕상 22-23장). 모든 이교 제의가 철폐되었고(왕상 23:4, 6, 10-12, 23-14). 변경 성읍에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산당까지 폐기하고 모든 예배의 중심은 예루살렘이 되었다. 그리고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그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사마리아(벨엘)의 산당을 박멸함으로써 사마리아를 영토로 합병할 수 있었다. 이는 다윗 왕국의 이상이 실현된 것을 의미하며, 해방된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다윗의 보좌로 통일된 것을 말한다. 다윗의 무너진 천막(암 9:11)은 다시 세워지고 회복되었다.

3)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출현하는데(B.C. 626년경, 렘 1:2), 그는 국가의 전체적인 역사를 배은망덕의 역사라고 생각하였다(렘 2:4-8). 하나님이 아니면 예루살렘의 죄는 결코 씻어낼 수 없는 얼룩이었다(사 1:18, 참고 시85:2). 예레미야는 요시아 왕을 이상적인 왕으로 예찬하였다(렘 22:15-16). 그러나 그는 이러한 개혁이 얼마나 일천한 것인가를 깨달았으며, 고대 전통으로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렘 6:16-21), 참된 회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렘8:4-6). 예레미야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유대는 단순히 외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며, 율법의 내적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4) 요시아 왕의 재위는 15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 뒤를 이은 요시아 왕의 아들들과 그리고 손자에 의하여 유다는 급격하게 멸망의 길로 달려간다.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으나 애굽의 바로가 그들 폐위하고 경솔한 성격의 소유자인 여호아하스의 형인 여호야김을 왕에 등극시키고 무거운 조공을 부과하였다(왕하 23:31, 36) 이 와중에 여호아김은 화려한 궁전을 건축한다(렘 22:13-14, 예레미아의 비난).

5) 예레미야는 이러한 야호야김의 조치들을 보면서, 부패한 국가와 결별하고 그 국가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예레미야에게 핍박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에게는 성전 출입이 금지되었고(렘 36:5) 그의 친구인 서기관 바룩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왕에게 전하는데, 왕은 바룩이 그것을 낭독하는 대로 소도로 베어 화롯불에 태워버리고 예레미야를 체포하라는 영를 내린다(렘 36:21-26),

6) 바벨론이 세력을 회복하였고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여호야김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바벨론에게 곧 항복하여 바벨론으로 끌려 가고(왕하 24:8-17), 여호야긴의 동생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다.

7) 맹목적인 애국심(하나님께서 간섭하시리라는 희망)으로 바벨론을 적대시하는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대한 반역을 획책하고, 이방의 다른 왕들과 함께 반역 음모를 진행시키는데, 낙관적인 선지자들에 의하여 이 계획은 지지를 받게 되고, 이를 경고한 예레미야는 더욱 더 어려운 지경을 빠지게 된다(렘 38장). 드디어 유다는 망하고 바벨론에 의하여 총독(그다랴)이 세워지지만, 극렬분자들은 그다랴를 쳐죽이고 애굽으로 도망친다.

에스겔은 자신의 방식에 따라 똑같은 주제(심판과 회복)를 표현하는데, 그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겔 37장)에서 그것이 사라진 나라임을 알았다. 그것들은 죄로 인하여 죽은 국가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났다. 국가적 죽음의 십자가 속에서 그 죄를 정화시키고,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살아난 국가였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나라가 있다(겔 37:23-28, 11:19-20).

예레미야 역시 심판을 외치지만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첫째로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어느 것도 하나님에 관하여 총체적일 수 없는 국가를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보는 관점을 전적으로 거부했다. 둘째로 이 때문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치열한 투쟁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우리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셋째로,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국가를 그토록 전적으로 거부했던 이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국가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 백성에 대한 생각은 예레미야 안에서 이스라엘 국가와는 상관없이 정립되었다. 넷째로, 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는다.

새 백성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 있으며 이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들은 거듭난 마음을 가진 순결한 자들이며, 참 백성으로 창조된 자들이다. 이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5; 눅 22:20)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는 마태복음 26:27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새 언약에 의한 새 백성을 알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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