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거기까지 이야기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몇 사람이 모여서 성품이 좀 별나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나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귀가 번쩍 띄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십년도 훨씬 넘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을까만, 무엇을 안다고, 옛날의 일들을 열심히 더듬어가며 한 마디라도 더 장단을 맞출 요량으로 아는 체했다.

인품이 어떠했고, 그가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준 영향은 어떠했고, 그가 갖가지 은사를 사용했던 것까지 비평했다. 한 가지 이야기가 끝나면 연달아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저기서 끊이질 않고 정신없이 열을 올렸다. 점점 몰입해가고 있었다. 꼭 그 사람을 성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자리처럼 우리는 열중했다.

그런데 그 자리의 한 분이 침묵 중이었다. 바로 이야기 도마 위에 올라 있는 그 사람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에 대한 비판을 시작한 의도도 바로 침묵 중인 분의 흥미를 끌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야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 뜻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눈에 보였던 일들에다가 자신들의 생각까지 집어넣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한참 떠들던 우리는 묵묵한 그분의 옆에서 그냥 머쓱해져 버렸다. 침묵의 이유를 물었다. 본인은 ‘험담의 종착역’이 되는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험담의 종착역? 내 머릿속에는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기차가 끼-이-익 쉭~ 하는 한숨을 토하며 멈추는 종착역의 풍경이 떠올랐다. 환경과 기후 조건을 불문하고 질주가 사명이었던 기차가 몸을 푸는 곳, 더 달리지 못하는 마지막 역. 종착역.

그분은 자신의 인품 속에다 폭풍처럼, 회오리처럼 달려와 생각을 어지럽히고 나아가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소문들을 다스리어 잠재우는 곳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많은 뜻이 포함되었음을 느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이 본인도 모르는 말들이 돌아다니고 있는지를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떠도는 소문이 칭찬이나 자랑스럽게 생각되는 부분이면 기쁘고 우쭐해진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그런 좋은 말들은 우리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에게 회자되지 않느니만 못한 험담들이 훨씬 더 활개를 치며 다닌다. 때론 누군가의 짐작, 분석, 견해까지 곁들여져서 부풀려졌음을 보고 분노를 느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젠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보다는 차라리 아무의 주목도 받지 않고 사는 게 편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내가 오랫동안 안부는커녕 마주친 적 없고, 더군다나 내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도 않은 사람의 일을 애써 생각까지 짜내어 추임새를 넣는 꼴이라니!

하던 말을 멈추고 냉정히 나의 말들을 점검해 보았다. 누군가를 칭찬하기보다는 비판을 더 많이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도 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질투와 시기 때문에 사랑해야 할 대상인데도 헐뜯는 말을 줄줄이 하고 있음을 부끄럽지만 아프게 고백해야 했다.

험담의 경우, 내 입에서 나간 그 말만 돌아다닌다는 보장은 없다. ‘이바지는 빼고 말을 보탠다.’는 속담이 있다. 옮기는 사람들의 견해와 추측까지 합해진다. 그리하여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쏜 화살처럼 빠르게 달린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고 표현할 만큼 은밀하고 향방을 알 수없이 퍼진다. ‘창과 검은 옆 사람만 죽일 수 있지만 날카로운 부분도 없는 세 치 혀는 바다 건너의 사람도 죽인다.’는 말도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말로 해하였던가! 큰 책망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회초리, 아니 몽둥이로 몰매를 수없이 맞는다 해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이 당연히 맞아야 할 것이다.

인품에 ‘험담의 종착역’을 세우는 훈련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말의 습관이므로 내게도 꼭 필요했다. 그분의 놀라운 지혜가 반갑기까지 했다. 나도 곧 훈련하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

이제 내 속엔 작은 종착역 하나 만들어지려 한다. 그럴지라도 습관 때문인지 남의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지러워진다. 고개를 숙이고 기초공사 중인 ‘험담의 종착역’을 들여다본다. 누군가를 이야기 도마 위에 놓고 재미로 재잘거리고 싶은 그 깨소금 같은 욕망이 올라올 때마다 그 자리를 바라보며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리하면 험담은 물론 모든 나쁜 말들이 청소가 될 것이다.

말의 대청소 앞에 서있는 내 마음의 눈에 허접한 것으로 맥을 추지 못했던 것들이 들어왔다. 정을 나누는 말과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들이 구석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듯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학자의 혀에서 나올 지혜로운 말과 은쟁반 위의 금사과같이 경우에 합당한 말이 자괴감을 동반하고 비쳐졌다. 생각해 볼 기회도 없이 뒷전에 밀려 있었던,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복음의 말이 가슴을 후벼파려고 달려오고 있었다. 나쁜 말 청소가 끝난 뒤에는 좋은 말을 나팔처럼 크게 외치며 다니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아직 기초 작업 중이지만 나쁜 말의 종착역이 내 안에 있는 줄 모르는 친구는 가십을 준비하고 평소처럼 전화를 걸어 올 것이다. 고소한 흥미로 던져질 그 유혹 앞에 마주할 대안을 미리 챙겨 봤다. 설계도만 펼쳐진 건설 현장에서 낭랑한 목소리의 멘트를 먼저 날리겠다는 결심이 그것이었다.

“종~~ 착~` 역, 종~착~역! 여기는 나쁜 말의 종착역입니다. 나쁜 말 여러분! 지루한 여행의 종착역에 드디어 당도하였습니다. 험담은 물론, 부정의 말, 낙심의 말, 비꼬는 말, 시샘의 말, 분노의 말, 독차지하려는 말. 은근히 자랑하는 말, 사랑 없는 말 등 모든 말 여러분, 이곳은 종착역입니다. 부디 더 달리고 싶은 욕망을 접으시고, 잃어버린 친구 없이 모두 데리고 편히 잠드십시오. 여기는 나쁜 말의 종~~착~~~역~~ 나쁜 말의 종착역입니다.” 연습 한 번에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내 안에다가 길들이지 않은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나쁜 말의 종착역 건설을 시작하게 한 그 시간은 참 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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