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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자유함을 방해하는 심리적인 기제들 ①
박준형 칼럼니스트  |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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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31  03: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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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자유함은 분별의 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인 전제이다. 그러니 분별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곧 우리들의 영적인 자유함에 대해서 배우는 것과 진배없다. 영적인 자유함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각오와 이에 감복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의 분별은 마치 경영대학원에서 다루는 경영이론과 같이,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되 현실적으로 적용이 불가능한 탁상공론에 불과할 것이다. 분별을 배우고, 분별을 한다는 것은 일정 시간 학습하면 마스터할 수 있는 기술자 자격시험이나 MBA 학위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분별은 대단히 복잡하고 영적인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과 공동으로 해나가는 분별은,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과 온갖 세상적인 의사결정 기법과 적당히 버무려지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우리 자신의 정욕과 야망을 내려놓고, 영적으로 자유하며, 그래서 세상에 속하지 않고 대신 하나님에게 우리의 주도권을 기꺼이 양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놀라운 분별의 메시지를, 비록 그것이 우리가 원하던 것이 아니고 고통과 고난을 준다 해도 그것이 영구하지 않음을 알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며, 우리가 죽은 다음 받게 될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오늘을 인내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적인 자유함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이런 분별의 과정에 선뜻 동참하기가 꺼려지는 것은, 외적인 사탄의 유혹과 세상의 시험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욕과 아울러 우리를 둘러싼 여러 심리적인 방해물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어떤 가시적인 선택을 하기 위한 분별이라는 행위는 내적인 성찰과 인내와 결심의 과정을 요구한다. 분별을 시작하는 우리가 굳이 직접적으로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의 도움을 받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자신의 심리적인 기제들과 상태들을 간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인 분별과 심리적인 상태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리고 이런 불안과 초조는 늘 때만 되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무슨 결정이라도 할라치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엄습해 온다. 잘못 결정하면 큰 일이 날 것 같다. 안절부절 못한다. 그래서 늘 결정의 시기를 놓치고 결국은 후회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것은 무슨 문제인가? 심리적인 문제이다. 물론 정상인도 이런 감정의 기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어린 다윗이 거인인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심리적인 긴장이나 불안이 없었을까? 다윗은 나단이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돌려서 이야기할 때 긴장하지 않았을까? 바울이 로마의 법정에 섰을 때는?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괴로워하시지 않았던가? 문제는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는 수준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매일매일 경건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우리의 분별의 문제를 전적으로 맡겨드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무작정 기도원으로 올라가 금식기도에 돌입하기보다는 조용히 골방에 앉아 자신에 대한 심리적인 점검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이러한 환경 조성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안 된다면 주위의 도움을 받으라. 영적인 지도자를 찾으라!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는, 즉 영적으로 집착하거나 부자유스러운 상태에서는 결코 올바른 분별이 가능하지 않다. 의사가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하듯이 우리의 심리적인 안정성이나 건전성은 분별의 과정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어디서 그런 불안이나 초조 혹은 더 나아가 강박증세가 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왜 결정의 순간만 되면 반복되어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 괴롭히는 것인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아직까지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가? 만약 이러한 문제가 사전에 재고되고 성찰되고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별의 단계로 넘어간다면, 이제는 이런 심리적인 문제가 우리의 영적인 문제와 합쳐져 분별의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분별자 내부의 정신적인 혼란만 가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자유함은커녕 더욱 더 문제 그 자체에 천착하게 될 것이다. 다니엘서 4장 36절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가‘ 정신적인 건강(sanity)을 되찾을 때 우리의 명예와 위엄과 나라의 영화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맞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별의 자리에 초청받은 자의 정신은 깨끗하고 맑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 직업과 저 직업 사이에서 고민한다든지, 이 집을 사는가 저 집을 사는가로 고민한다든지, 20년간 출석했던 이 교회를 떠나야 하는지 그냥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든지 등등, 그 문제가 비록 세상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분별은 결국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문제이고(하나님이 이 일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와 ‘나는 지금 그런 하나님의 뜻에 열려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영적인 문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의식적으로 혹은 양심적으로 성찰하고, 우리의 정신 상태는 어떤가에 대한 심리적인 문제 파악과 진단 여하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사탄과 세상의 권세들은 하나님의 자녀됨을 입은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최선의 선택을 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행복을 가장 싫어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감정을 소란하게 만들어, 올바른 분별의 길에서 이탈하도록 부추긴다. 겁쟁이에게는 계속 소심하도록 부추길 것이며, 경쟁심이 강한 자에게는 경쟁심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자에게는 자랑을, 그리고 섣불리 가정을 잘하는 자에게는 계속 가정해 사람들을 마음대로 재단하도록 도울 것이며, 실패가 두려운 사람에게는 실패의 그 끔찍함을 계속 상기시킬 것이고, 성공을 꿈꾸는 자에게는 더 큰 성공을 하라고 부추길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 마음대로 선택하며 살도록 유혹한다. 그래야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C.S. 루이스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사탄 스크루테이프가 드디어 예수를 누르고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분별과 이를 방해하는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나누도록 하겠다. 이런 외적인 압박과 우리 내면의 유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가 분별의 성패로 이어짐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다음부터는 우리들의 분별을 방해하는, 우리의 영적인 자유함을 빼앗아가는 심리적인 기제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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