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이 베푸는 친절

참 맛있는 햄버거를 먹었다. 그것도 감격과 감동, 감사함으로 먹었다. 오랜만에 뻑뻑하지 않고 적당하게 촉촉한 햄버거를 먹었다. 게다가 잘 구어진 양파는 미끄러지듯이 씹히며 입안 가득 단맛을 느끼게 했다. 데스 플레인에 있는 파라다이스 펍(Paradise Pub: 우리말로는 ‘무릉도원 주막’이라고나 할까)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워크숍에 참여했던 분이 소개해 준 맛집이었다. 주문을 하려고 메뉴를 보는데 “현금만 받습니다(Cash Only)”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갑을 열어 보니 3불밖에 없었다. 불판에 구운 1/3 파운드 햄버거는 $5.99. 세금을 더하면 거의 7불이 되는데 현금이 모자랐다.

“Cash Only?” 주인에게 물었다. 들려 오는 대답은 “Yep!” 이미 식당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물러설 수는 없었다. 현금지급기가 가까운 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근처 월그린에 가면 있다고 했다.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한 중년 남성이 말했다. “지금 주문하세요!” 미리 주문하라는 말인가 하여 주문을 한 다음 주인에게 말했다.“곧 돌아올게요!”그 중년 남성이 다시 말했다. “돈 찾으러 갈 필요없어요. 대신 내줄게요.” 깜짝 놀랐다. “정말이요?”“예, 제가 지불할게요!”“감사합니다. 저는 목회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 그를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대화가 계속되었다. “저는 수학 선생입니다. 당신은 몇 년째 목회자로 일하고 있습니까?”“25년입니다.”“저는 24년 간 일했습니다.”“제 이름은 폴(Paul)입니다.” “저는 짐(Jim)입니다.” “어느 학교에 계십니까?”“롤링메도우 고등학교입니다.”“여기는 어떻게 왔습니까?”“봄 방학이라 집밖 청소와 정리를 하고 있다가 맛있는 햄버거를 먹으려고 왔습니다. 사실 저도 당신처럼 현금이 없어서 음식을 먹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곤란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생판 모르는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 소위 무작위로 베푸는 친절(Random Acts of Kindness)이었다. 조건 없는 친절, 그의 친절이 담긴 햄버거라서 세라토닌이 올라갔는지 정말 맛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ous Blessing』이라는 책을 수학 선생인 짐에게 보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는 건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기억

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몸붙여 살지 않았느냐? 과부나 고아들을 괴롭히지 말아라.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 그들이 나에게 울부짖어 호소하면, 나는 반드시 그 호소를 들어 주리라”(출 22:20-22). 또한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곧 하나님께 베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없는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야훼께 빚을 주는 셈. 야훼께서 그 은혜를 갚아 주신다”(잠언 19:17).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 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마 10:42).

주는 행위에서 힘과 능력을 경험한다. 생명감을 경험하고 즐거움을 경험한다. 주는 자는 마음이 부자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결코 줄 수 없다. 많은 물질을 소유한 자가 부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물질이 없어도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면 놀랄 것이다. 불교에서도 물질이 없어도 줄 수 있는 것 일곱가지를 말한다. 소위 무재칠시(無財七施)다.

주는 행위는 받는 자를 가치있게 하고 존중받게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에 대한 감사이며 그 보답이다. 우리가 줄 때 우리는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을 주셨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겸손으로 사랑을 주신 분이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의 생명을 주신 분이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다. 우리가 줄 때 새로운 관점에서 생명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헨리 밀러는 “가녀린 풀잎같이 미약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목을 받는 순간 그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하나의 우주가 된다.”고 말했다. 흔하디 흔한 풀잎도 주목을 받으면 아름다운 우주가 된다. 주는 행위는 생명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이며, 베푸시는 은혜에 대한 기억이다.

주는 자가 행복하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나는 여러분도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 주고 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고 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명심하도록 언제나 본을 보여 왔습니다”(행 20:35, 공동번역).

2005년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대학은 친절한 행위와 행복 간의 함수 관계를 조사했다(참고: 토마스 람게, 행복한 기부: 성공을 부르는 1%의 나눔, 2007). 실험 대상자들에게 6주 간‘의식적으로 친절한 행위’를 하게 했다. 노숙자에게 빅맥 사주기, 주차미터에 동전 넣기, 헌혈하기, 친구 가사일 돕기, 노인 친척 방문, 감사 편지 쓰기 등을 하도록 했다. 실험 대상자들은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6주간 관찰되었다. 첫 번째 그룹은 아무런 선행도 하지 못하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일주일에 하루 동안만 다섯 가지 친절한 행위를 한꺼번에 할 것을 요구했으며, 세 번째 그룹은 다섯 가지 선행을 한 주 동안 고루 나누어서 하도록 했다. 아울러 자신의 생활만족도를 1(전혀 행복하지 않음)에서 7(매우 행복함)까지 등급을 매겨서 평가하도록 했다. 실험이 진행되면서, 비봉사자 그룹의 만족도는 현저히 줄었고, 세 번째 그룹의 행복도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하루 동안 집중적으로 선행을 한 실험대상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친절한 행위와 행복의 함수 관계 7가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1) 자신이 속한 공동체 및 타인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2)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감사하게 된다. 3) 타인의 불행에 대한 죄의식을 감소시킬 수 있다. 4) 소속감과 협동심을 고취시킨다. 5) 온정을 베풀었다는 흐뭇한 감정을 지니게 된다. 6) 새로운 친구 관계를 맺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7) 친사회적 호혜주의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가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을 돕는 자가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봉사를 행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이 나와 있다. 런던 경제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부유층에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크게 증가했다. 우울증 환자들과 자살자 통계에서 최상위를 달리고 있는 계층은 주로 부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오히려 남에게 주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행복은 선행 속에 있으며, 행복한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전도서는 말한다. “하나님께 받은 선물을 너그럽게 나누어 주라. 그러면 나중에 너에게 돌아올 것이다. 너의 선물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네가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전도서 11:1-2 TLB/주인돈 역) 가난한 자들에게 줄 때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것”으로 함께할 것을 약속하신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고,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다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 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이사야 58:7-8). 주는 자에게 야훼의 영광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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