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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거룩한 국가 공동체와 묵시적 왕국(2)하나님 나라(9)
이학진 장로  |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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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8  00: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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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묵시였다. 구약에서 묵시는 계시를 의미하는데, 특별히 종말 사건에 대해 신비적 언어로 표현된 계시를 말한다. 충분하게 묵시적 양식을 취하고 있는 성경은 구약에선 다니엘서이고, 신약에선 요한계시록이다. 비록 중간사 시대와 신약 시대에 묵시를 다룬 문헌이 많이 있었지만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종말론적인 비관주의가 특징이었다. 그리고 그 기원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고대의 대망에 기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신학의  참된 근원적인 사실로서 계속 백성들의 정신 속에 하나의 교리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는 어리석은 신념을 낳았는데, 그 신념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양심을 갑옷처럼 둘러쌈으로써 심판을 선포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서야만 회복시키신다는 선지자의 선포를 무디게 하였다.

참고로, 구약적인 종말론적 성향에 대하여, 옛 벨하우젠 학파는 종말론이 바벨론 포로 후기에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중략) 그러나 최근에 와서 학계의 방향은 종말론이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이 인식되고 있다. 많은 수의 학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종말론적 희망을 낳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지 래드(G. Ladd) 교수는 하나님 왕국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 이스라엘 민족이 갖고 있던 신관과도 일치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G. 래드 교수에게 영향을 끼친 브라이젠(T.C. Vriezen) 교수에 따르면, 종말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의식에서 하나님 왕권의 실재성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에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현상이다. 오히려 가장 비참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 길만이 삶의 기반인 것을 인식할 때, 동시에 이러한 신앙의 실재성이 백성들의 삶에 비판적으로 와 닿을때, 그리하여 장차 다가올 대변혁이 하나님의 공의를 충복시킬 신의 간섭으로 간주될 때,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신실성을 굳게 지키시고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이 굳어지고 있다고 고백하게 될 때, 바로 그때에 종말론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 속의 이스라엘의 삶이란 두가지 측면을 갖게 된다. 첫째는 신의 심판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과 둘째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종말론이란 이스라엘 구원의 역사 속에 뿌리를 둔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으로부터 넘쳐 흐르는 종교적 확실성인 것이다(『개혁주의 종말론』 안토니 후쿠마 저, 류호준 역, 14-15쪽)

4)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소망은 회복기 공동체에서 처음에는 팽배하였지만 결국은 비참한 절망으로 끝이 났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다윗 왕국의 후손의 메시아로 스룹바벨을 생각하였다(사 11:1, 슥 6:12) 다르게 말하여 하나님 나라는 남은 자들에 의하여 수립될 것을 믿었다. 물론 이 소망은 깨어졌다, 스룹바벨은 결코 메시야적인 왕이 아니었으며 돌아온 자들에 의해서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페르시아의 권력은 200년간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다.

5) 그래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천상적인 인자를 통하여 역사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왕국(묵시론적 왕국)을 기대하였다(단 7장). 그래서 종말론적인 묵시 문학이 성행하였고, 유대교는 끊임없이 도래할 종말에 대하여 검토하게 되었고, "주여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킬 때가 이때이니이까"(행 1:6)라고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아가 묵시 문학은 세계의 전쟁을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범주적으로 우주적이라고 주장한다. 지상의 갈등의 모든 배후에는 선과 악, 빛과 어둠,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과 파괴적인 혼돈의 세력 사이의 끊임없는 전쟁이 있는데 인간들은 어느 한쪽에 가담하도록 요구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다는 건전한 시각이 있다. 이렇게 묵시 문학은 역사의 주님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합법적 산물이다.

6) 유대교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라는 관용어는 구약에 나타나지 않지만, 그 개념은 역사서와 예언서의 도처에서 발견되며 하나님의 왕권에 대해서는 이중적으로 강조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출 15:18, 민 23:21, 신 33:5, 사 43:15)과 온 세상의 왕(왕하 19:15, 사 6:5, 렘 46:18, 시 29:10, 99:1-4)으로 언급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현재도 왕이시지만 왕이 되셔야 한다(세상 모든 사람들과 열방에 그의 왕 되심을 보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 미래적인 왕국의 형태에는 두 종류의 소망이 있는데 히브리적이며 예언적인 소망은 역사 밖에서 일어날 것이며, 시간 안에서는 다윗의 후손에 의하여 통치될 지상적 나라를 기대하였다(사 9-11장) 그러나 유대의 멸망과 더불어 이러한 역사적인 소망들은 퇴색해 버리고(유대 묵시주의자들은 역사적 현실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행동하심을 잃어버렸다), 천상적인 인자의 인격을 통해서 역사를 뛰어넘는 초월적 왕국을 가지는 묵시론적인 행위를 기대한다(단 7장, 다니엘의 꿈, 하늘의 네 짐승과 인자에 대한 환상). 이는 구약의 왕국 묘사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뚫고 들어오셔서 그의 구속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G, 래드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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