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열전(5)

목숨 걸고 전투에 임했지만 정작 아브라함에게 남은 것은 절망감뿐이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패한 메소포타미아 연합국은 언제 다시 돌아와 복수할지 모를 일이었다. 기습 작전을 했던 아브라함으로선 연합국의 정규군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또 다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묵숨 걸고 지켜낸 조카 롯은 일언반구도 없이 소돔 왕을 따라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 버렸다. 본문의 첫 번째 단어인 “그 후에”는 명백하게 본문의 이야기 배경이 14장의 일련의 전쟁 이야기와 롯과의 이별 이후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불안해 했는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다.“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가진 두려움의 실체는 첫째, 동방의 연합국에 대한 두려움이요, 둘째,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조카마저 잃어 버린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브라함은 전쟁의 승리로 당연히 가질 수 있었던 전리품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나, 약속은 차치하고 연합국이 보복이라도 하면 자손도 없이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마음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받고 재산을 얻는다 해도 후사가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엔 그의 종 엘리에셀이 상속받을 것 아닌가! 그 때문에 자식을 갖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라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격정적으로 불만을 토로한다. 생동감 있는 대화가 이어지는 본문의 3절을 원문의 순서대로 읽어 보면, “자신”의 무자(無子)함이 강조되고 있다.

“보소서, 내게 당신이 주지 않았습니다.
보소서, 내 집의 사람이 나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른 종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 한 것은, 당시의 풍습을 따른 것이다. 엘리에셀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노후를 돌보고, 장례식을 잘 치른 다음 남은 재산을 소유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약속하신 후손에 대한 기대를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절망이나 당신을 향해 토로하는 정제되지 않은 불만에 대해 책망하시지 않고, 잠잠하게 그러나 확고하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신다. 4절에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실 때의 전형적인 양식을 가져와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위대한 계시의 말씀을 들려 준다. 엘리에셀이 아니라 “네 (아브라함)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하늘의 별을 보여 주시며 셀 수 없이 많은 뭇별들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이 많아지리라고 약속하신다.

4천 년 전의 밤하늘을 상상해 보라. 아주 놀라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시골의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은하수와 별들에게 압도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날 밤 아브라함의 마음이 느껴질 것이다. 단 한 명의 자녀도 없었고, 심지어 자기 목숨도 담보할 수 없었던 그에게 하나님이 보여 주신 미래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를 “믿었다.” 로마서 4장 18절이 말씀하듯,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믿음”이라는 단어가 6절에 등장한다. 팔순 넘도록 한 명의 후손도 갖지 못했건만, 하늘의 별과 같이 후손을 많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아멘”하고 믿음의 반응을 한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던 아브라함을 어루만지고 회복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시청각 교육으로 아브라함에게 확신을 주셨던 하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약 체결 의식을 행하심으로 당신의 약속을 재확증하신다.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떤 땅을 주실지도 확증하신 것이다. 이로써 1절에서 말씀하셨던 “상급”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물론 언약 체결 예식은 아브라함이 표징을 요구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졌다. 이 의식은 당시 계약을 체결하던 근동의 풍습과 관련이 있는데, 이러한 언약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먼 미래의 일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약속의 후손들이 어떻게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큰 영토를 차지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주시며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의 신앙과 열정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음을 확증하신다.

언약 의식은 타는 횃불이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날 때 절정에 이른다. 계약 당사자가 동물을 죽여 쪼갠 다음 그 사이로 지나가며 계약 조건을 낭독하는데, 만일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쪼갠 짐승처럼 계약 파기자가 쪼개어지는 저주가 닥칠 것이라 다짐한다. 당시의 이런 관습으로 인해 “언약을 맺는다”는 히브리어 표현이 “언약을 자른다”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처럼 계약 당사자의 신분 차이가 있을 경우, 왕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봉신인 아브라함이 그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면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그런데 놀랍게도 쪼갠 짐승 사이로 걸어가야 할 아브라함 대신에 하나님의 현현으로 나타난, 타는 횃불이 사체 사이를 지나며 당신의 약속을 선포하신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성취의 책임이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에게 있다고 맹세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 언약적 저주를 당하실 것을 암시한다. 이는 당신 자신을 담보로 언약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창세기 15장에 나타난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진정한 성취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언약의 요구를 이행하셨고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그 나라의 백성은 이제 하나님이 주신 땅을 상속받게 되었다.

절망에 빠졌던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으로 응답한다. 하나님의 강력한 약속의 말씀으로 인해 다시 힘을 얻은 것이다.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하나님의 약속이 훨씬 더 구체화되었다. “네가 밟는 땅(창 13:14-18)”을 주겠다 하신 약속은 그 지경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이를 것이며 가나안 10족속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특정된다.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도 마찬가지다.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리라”(창12:7)고 하신 하나님은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고(창 13:15), 이제 본문에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신다.

아브라함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의 불임(창 11:30)이라는 엄연한 현실 때문에 자신의 후손은 롯이라 생각했고, 롯이 떠나가자 엘리에셀을 염두에 두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신의 몸에서 날 자라 말씀하시지 않는가! 지금까지 기대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내의 불임이라는 어려운 상황 중에 아브라함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는 다시금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16장을 이해하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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