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나 기대로부터의 해방

우선 불필요한 가정(假定)이나 기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하나님께 분별의 주도권을 넘겨드렸다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혹은 타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가정이나 기대도 패키지로 넘겨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백지수표 상태가 되길 바라신다. 그래야 그 수표의 궁극적인 주인인 하나님이 마지막 단계에서 금액을 적어내시게 되는 것이다. 두 가지 이상의 선택사항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되는 분별의 과정이라면, 물론 이성적인 접근을 피할 수 없다. 다양한 출처의 정보도 입수해야 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각각의 항목에 대해 좋고 나쁨을 비교해 볼 수도 있고 그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사전조사’라고 하자. 이제는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이나 평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최종단계인 선택으로 넘어갈 것이다. 예를 들어, 길가의 자동차들을 보자. 자동차 회사는 신차 한대를 디자인하기 위해 수십억, 수백억 이상의 돈을 연구비로 사용할 것이다. 다양한 루트의 정보를 입수할 거고, 긴 시간 검토할 거고,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칠 거고, 드디어 소비자들이 가장 살 만한 차라고 생각해서(가정해서) 누군가가 최종 선택을 한 다음 차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차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이자마자 성패는 결정된다. “어, 왜 저런 차를 만들었지?” 더 심한 경우, “저 정도의 차를 만드느라 그렇게 많은 돈과 사람과 시간이 투입되었단 말이야?’

이런 원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제 각각이다. 『컬처코드』(리더스북, 2008)를 쓴 문화인류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각각의 문화에 고유하고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있는‘컬처코드’를 잘못 읽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컬처코드’를 알면 세상의 어떤 것도 예전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컬처코드를 알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동기를 깨닫게 되어 새로운 자유를 얻는다’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결론을 맺는다. 컬처코드가 새로운 안경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컬처코드가 어떤 특정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 거시적인 안목과 이해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라파이유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으나 분별이 각 개인(회사이든 나라이든 간에)마다의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문제를 특정한 시간대에 다루는 것이라면 이런 일반화된 문화코드 역시 우리에게는 섣부른 가정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일반화의 오류를 잊을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수학에서의 통계, 과학에서의 패턴 혹은 유형화, 경제에서 말하는 미/거시경제, 문화에서 말하는 컬처코드 등으로 세상을 완전하게 이해했다면, 그래서 이런 이론에 기초해 개인과 사회와 나라를 다스렸다면, 이 세상의 그 어느 회사나 사회, 나라가 망할 일은 없어야 했을 것이다. 로마가 망한 것이 전문가들의 이론이 없어서였겠는가? 오늘 이 시각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것이 하버드의 MBA가 부족해서였겠는가?

세계적인 인지심리학자인 게리 클라인의 『인튜이션』(한국경제신문, 2012)에는 섣부른 가정이 부른 참사의 예가 다뤄진다. 1980년 말과 90년 대 초, 이란-이라크전의 한복판에서 활약한 미국 군함 빈센스호의 함장 로저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함장은 이란의 F-4 전투기 2대가 함선에 접근하자, 이미 레이더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고, 미사일로 공중격파 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첨단 전자장치를 이용해 전투기의 레이더를 교란시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로저스 함장은 이 두 대의 이란 전투기들이 공격할 의사 없이 단지 교란을 목적으로 비행한 것이라‘가정’해서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고, 결국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판명됐다. 이란 전투기들이 싱겁게 돌아가고 만 것이다. 이 책에서 클라인은 함장의 ‘경험’에서 나온 직감적인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로저스 함장은 또 다른 사건에 연루된다. 그는 1988년 7월 3일, 반다르아바스 공항을 이륙한 이란항공 655편인 에어버스 300에 2대의 마사일을 발사해, 비행 시간 7분 8초만에 이 민항기를 공중에서 폭파시켜 버렸다. 여객기의 항로가 전술적으로 수상하다는 이유(가정)와 시간 압박, 공포심, 불확실성 등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려진 잘못된 의사 결정의 사례로 전 세계에 각인됐다. 클라인은 ‘기대에 따른 편견’이 그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즉 잘못된 가정이 문제라는 것이다.

문화 간 오리엔테이션에 관한 『크로스컬처』(바이북스, 2010)에서 필자는 ‘가정(假定)의 문제’가 타 문화권에서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하면서, 타 문화권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문화를 알려면 가정하지 말고 가라. 자신의 렌즈를 내려놓고 가라.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고, 담고 와라.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 문화는 겪고 난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이지 미루어 짐작하고 그 틀 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가 너희보다 크다. 가정이란 우상을 부숴버리지 않는 한, 문화의 환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직 너의 눈만 믿으라’고 당부했다. 이 책에 실렸던 ‘잘못된 가정’의 한 가지 예를 소개한다.

* 가정 1 : 지금은 세계의 수퍼파워가 된 미국에도 최악의 대통령이 있었다(만약 지금도 있다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21세기북스, 2005)에서 미국 29대 워런 하딩 대통령을 소개한다. 그는 변변찮은 업적 하나 없이, 3일에 한 번씩 백악관에서 포커판을 벌였고, 금주법 시대에 술을 즐겼으며, 국가의 요직에 친구들을 앉히는 무분별한 인사로 나라의 혼란을 가져왔다. 잘못된 정책이나 판단 실수가 아닌 대통령의 자질 그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하딩은 재임 2년여만에 사망했다. 그런 그를 미국 국민들은 무엇 때문에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한 마디로 그가 잘 생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워렌 하딩의 출중한 외모를 본 사람들은 아무 경계심 없이 그를 용기 있고 총명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결론지었다고 글래드웰은 말한다.

* 가정 2 :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모든 프랑스인들은 흉물스런 에펠탑이 파리의 경관을 해친다고 싫어했고, 문화가 살아 숨쉬는 파리에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이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에펠탑의 설치를 반대했던 한 유명한 작가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다가 결국 에펠탑 중간에 위치해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에펠탑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 만국박람회의 공모 과정을 거쳐 건립되었다. 당시 파리에는 대리석으로 지은 성당과 건물이 대부분이었는데, 에펠탑은 300m가 넘는 현대적인 철골 구조물이었다.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에펠탑은 파리 아니 프랑스의 상징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건축 초기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지금 뭐라 할까?

우리들의 영적인 자유함을 방해하는 첫 번째 방해물은 우리들의 막연한 기대와 가정이다. 당신은 ‘척’하면 아는 사람인가? 늘 기대를 많이 하는 사람인가? 섣부른 가정으로 인한 폐해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하나님과의 분별은 이런 기대와 가정을 인식의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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