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치유 및 가족 성장 상담(203)

성경은 인생의 생생한 교훈들이 가득한 보물창고 같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향기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산, 한 사람을 성경에서 뽑으라 한다면 저는 오늘 나누고자 하는 이 여인을 뽑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을 기록한 사도행전 속에 이 여인의 이야기가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 동네의 완전 복음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 아름답고 향기나는 여인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1.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던 여제자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던” 예수님의 여제자였습니다(사도행전 9:36). 한두 번의 선행과 구제가 아니라, 일평생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구제와 선행을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거나 권세를 가진 여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바느질을 하는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죽었을 때 가족에 대한 기록이 없고 제자들이 베드로에게 와 달라고 연락을 취한 것, 많은 과부들이 와서 운 것을 볼 때 그녀도 외로운 과부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이 무엇으로, 어떻게 심히 많은 구제와 선행을 베풀 수 있었을까요?

다비다는 특히 가난한 과부들에게 선행과 구제를 많이 베푼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그 동네의 모든 과부가 와서 울며 “다비다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였다”(사도행전 9:39)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비다는 자신의 바느질 솜씨로 변변한 옷가지 하나 없는 가난한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손수 지어 주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거창한 선행과 구제를 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들(작은 물질과 기술)을 매일매일 일평생 나누며 산 것입니다.

다비다의 선행이 중요한 이유는, 가진 것 없어도 주님의 마음을 가진 주님의 제자라면 누구나! 얼마든지! 선행과 구제를 하면서 아름답고 향기나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가진 게 없다는 핑계를 대며 구제와 선행을 외면해 왔을까요? 다비다를 생각하면, 우리 대부분은 구제와 선행을 베풀며 살 수 있도록 이미 받은 것이 많은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나의 기술이 필요한 사람들, 내가 가진 적은 것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마음 들여 찾아보면 주변에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일평생 나누고 살면서,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한 주의 제자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진정한 위로와 치유가 있는 선행과 구제

다비다의 선행과 구제는 단순한 물질 나눔, 재능 나눔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그래서 진정한 위로와 치유가 넘치는 선행과 구제였습니다. 그녀는 외로운 과부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외로움과 가난, 아픔과 고통과 눈물을 함께 나누며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절실한 필요들을 가족을 돌보듯 하나하나 채워 주었습니다. 일방적인 베풂이 아닌 마음과 시간과 정성과 물질과 재능을 나누는 전인적인 나눔이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로마서 12:15)는 말씀처럼, 진정으로 함께 울어 주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구제와 선행이었습니다.

다비다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아픔을 감싸 주고, 절실한 필요를 채워 주며, 함께 짐을 나누었습니다. 과부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치유를 가져다 주는 선행과 구제였습니다. 다비다의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프고 힘든 과부들에게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듣고(관심과 경청), 마음을 같이 하고(이해와 공감), 마음의 필요와 물질의 필요를 기꺼이 채워 주는(치유와 위로), 즉 전인적인 필요를 채워 주는 선행과 구제였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님을 대신해 상담자, 치유자, 위로자, 공급자로 일평생 산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 받았던 시간, 재능, 물질, 치유와 위로를 아낌없이 나누며,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 모두 이런 인생 살도록 기도합시다! 

3. 죽음이 너무 아까운 인생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다비다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두가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마침 가까운 이웃 동네에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와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중풍병자 ‘에니아’를 낫게 한 소문을 듣고, 즉시 제자들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했습니다. 죽기에 너무 아까운 이 여제자가 주님의 은혜로 다시 살 수 있기를 모두가 소망했습니다. 특히 다비다에게 은혜를 입었던 많은 과부들이 그녀가 베풀었던 것들을 보여 주며 그녀의 죽음을 너무나 애통해 했습니다.

그녀가 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은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베드로가 오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주님의 제자들과 많은 과부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병자들을 고친 경험은 있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여 일어나라”(사도행전 9:40) 하고 명했을 때, 그녀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할렐루야!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아깝게 여기고 베드로를 통해서 주의 은혜를 구했기에 주께서 다시 살려 주시는 은총을 경험한 것입니다. 다비다는 일찍 죽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인생! 우리 모두 죽음이 너무나 아까운 인생, 향기나는 인생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4. 마지막이 더 아름다운 인생

다비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특권을 경험합니다. 제자들과 과부들이 얼마나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는지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전에도 선행과 구제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미쳤지만,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한 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녀의 부활 소식을 듣고 많은 동네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삶을 귀하게 보시고 그녀를 높여 주셨습니다. 전무후무한 기적을 경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놀라운 능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사도행전 9:42)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녀로 하여금 동네 많은 사람들이 주 앞에 돌아오는 영광스러운 결실을 맺게 하셨습니다. 그녀의 삶은 끝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는 주님의 축복이 잘 어울리는 인생이었습니다. 다비다처럼 치유와 위로를 주는 선행과 구제를 통해 하나님께 진정으로 드려지는 귀한 삶 되길 기도합니다.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주인의 즐거움에...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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