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선 지음 / 나무와숲 펴냄(2014)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한 편의 기행문,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역정이라고 표현한다. ‘그동안  별꼴 다 보았다. 볼 꼴, 못 볼 꼴,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꼴들을 다 보고 살았다. 험한 일들을 많이 보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고달프고 길어서 다시 젊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살다 보니 그냥 넘기기 아쉬운 점들이 많아 기억을 더듬어 기록하다 보니 책이 되었다. 그때그때 느꼈던 감정, 경험 그리고 삶의 궤적을 옮긴 것이다.’

‘그때그때 느낀 것들을 기록하다보니 동시대의 한국 역사가 되어 버렸다.’는 저자의 말대로, 식민지, 남북 분단, 한국전쟁, 가족과의 이별, 피난, 가난, 공부, 군대, 월남전, 미국 유학, 미국에서의 의사 생활, 방북, 북한 형제자매와의 재회, 의료 선교 등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자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냈다.

저자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일곱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개인 자격으로 방문한 첫 번째와 마지막을 빼고, 서북미의료국제선교회 팀장 등의 자격으로 북한에 들어가 인도적 지원 사업을 했다. 이후에는 기드온동족선교회와 함께 거의 매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중국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에 흩어져 있는 탈북자들이나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 치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 게재된 북한 이야기는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내용들이다.

‘먹을 것이 없어 입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배는 입보고 일 좀 하라는데 할 일이 있어야지요. 먹을 것이 있어도 맛을 볼 수 없군요. 급하게 위로 빨아들이니까요. 할 말은 많은데 입을 움직일 수 없군요. 너무 감시가 심하니까요. 말을 하다가 내 몸보다 다른 사람들의 몸을 망칠 수 있으니까요. 갈 곳은 많은데 갈 수 없군요. 발은 잘 움직이는데 갈 수 없군요. 검문소가 너무 많네요. 가려면 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 갈 수 없으니 답답하군요.’(본문 중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며, ‘돈이 없어 공부를 못했다기보다 돈이 없어 공부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은 일천만 이산가족 중 행운아라고 말한다.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못 만났지만 형제자매들을 모두 만났다면서 ‘건강을 허락해 주고 잘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여우도 죽을 때는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사람은 오죽할 것인가.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삶의 후반기를 정리하는 내게 북한은 나를 낳아준 고향이요, 남한은 나를 키워 준 고향이다. 나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래서 고향이 더 강해지고, 더 부유해지기를 바란다.’고 마지막 소원을 피력한다.

저자는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태어나 안악 양산인민학교를 졸업했다. 해주2중학교를 다니던 중 전쟁이 일어나 1.4 후퇴 때 아버지와 함께 내려오다 헤어져 홀로 온갖 고생을 다했다. 부산 피난 시절, 주경야독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 성신대학 의학부(가톨릭 의과대학)에 합격한 뒤 의사의 길을 걸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뒤에도 35년간 의사로 일했다.

박상원 목사(기드온동족선교회 회장)는 “조국을 떠나 살면서도 통일을 갈구하는 사람들, 휴전선 바로 아래에서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 혹 사는 일이 바빠서 통일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좋은 교훈과 정보가 될 것”이라며 일독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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